세상일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다.
'옳다, 그르다'는 사람의 인식일 뿐이다.
사람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은 다르다.
세상은 다양하고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다.
자기주장은 가능하지만 집착은 옳지 않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자기 인식에 대한 교만이 나를 망친다.
세상은 바뀌고 사람도 변한다.
불변의 존재인 '나'란 애초에 없다.
상선약수, 물 같은 덕행이 최상의 선이다.
속담에 "사람은 높은 곳으로 걸어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였다.
물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면서도 만물과 다투지 않는다.
물은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속도를 경쟁하지 않는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여 바닥부터 채워 나간다.
인생의 바닥에 이르렀다면 이제부터 채워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물 같은 생각, 물 같은 삶을 지향하면서 스스로가 물이 되어보시라.
절망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희망은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물극필반, 사물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변화한다.
굳세진 다음에는 노쇠하게 되고, 내려간 다음에는 반드시 올라가게 된다.
사람은 '칠정육욕'을 지니고 있다.
욕심과 욕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과정이 바로 삶의 본질이다.
차고 넘치는 순간까지 과유불급을 깨닫지 못한다.
지나침에 나를 망치고 나서야 모자람에 눈을 뜬다.
욕심이 과하면 욕망의 늪에서 죽게 됨을 알게 된다.
다음은 욕심의 끝, 지나침의 종말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숲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가 도끼를 들고 나무 한 그루를 찍으려 하자 갑자기 나무 위에서 금빛 부리를 가진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새는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를 베려고 하세요?"
"집에 땔감이 없거든."
"이 나무는 베지 마세요. 집에 돌아가 계세요. 내일 아침이면 집에 땔감이 가득 쌓여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 새는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노인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잡시다. 내일이면 집에 땔감이 그득하게 될 거요."
이튿날, 아내는 마당에 땔감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자 영감에게 말했다.
"빨리 나와봐요. 어서요. 누가 우리 집 마당에 땔감을 이렇게 수북이 가져다 두었어요."
노인은 금빛 부리를 가진 새를 우연히 만난 과정을 아내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이제 땔감 걱정은 덜었어요.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요.
금빛 부리를 가진 새를 다시 찾아가 먹을거리를 달라고 하세요."
<중략>
노인은 금빛 부리 새에게서 먹을거리를 잔뜩 얻게 되고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중략>
"금빛 부리를 가진 새를 다시 찾아가 가게를 하나 선사해 달라고 하세요."
노인은 금빛 부리 새에게서 필요한 물건이 가득 채워진 가게를 얻게 됩니다.
<중략>
"금빛 부리를 가진 새를 다시 찾아가 나와 당신을 왕후와 임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노인은 금빛 부리 새에게 부탁하였고 두 사람은 왕후와 임금이 되게 됩니다.
<중략>
"금빛 부리를 가진 새를 다시 찾아가 왕후인 나에게 마력을 갖게 해 주고 매일 궁전으로 날아와 춤추고 노래하라고 하세요."
노인은 금빛 부리 새에게 왕후인 아내의 부탁을 전했고 화가 난 새는 노인을 노려 보며 "돌아가 기다리세요."라고 말하였다.
다음날 잠에서 깬 노부부는 자신들이 난쟁이로 변해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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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욕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혼 빚 실업 3종 세트를 갖추게 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욕심이 불길처럼 타오를 때 병마가 온몸을 감싸고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병을 오래 앓으면 의사가 된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혼 기간이 길어지니 이혼 컨설턴트가 되고 있다.
채무불이행 기간이 길어지니 빚에 대응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난다.
실업 기간이 길어지니 무소유의 지혜(?)가 쌓여간다.
100수를 살고 계시는 김형석 선생이 말씀하셨다.
"내가 100세를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5~75세 사이더라."
지금이 괴롭지만 50대 후반은 아직 인생의 황금기에 닿지도 않았다.
50대 후반, 옛날로 치면 죽어도 아쉽지 않은 나이지만 죽음은 가만히 있어도 찾아온다.
21세기 100세를 사는 인생이라 아직도 삶에는 황금기가 남아 있다.
쟈샬 보다는 희망의 삶으로 버텨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이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불교철학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