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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채무자의 편이다/채권추심 버티기

'채무액 특별 감면 안내문' 고맙지만 지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채권자도 할 만큼 추심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채무자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이름하여 채무액 특별 감면이다. 처음에는 이자의 상당부문을 면제해 준다고 하다가, 좀 지나면 이자 전액 면제에 원금 일부는 장기 분할 상환조건을 건다. 좀 더 지나 부실채권으로 매각해야 할 때가 임박해서는 원금의 거의 절반 이상을 감면해 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단, 감면해 주는 대신에 나머지 상환분은 일시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조건이 좋아도 이쯤에서는 채무자에게 돈이 없다. 한 푼도.

 

채무액 특별 감면 안내문도 때가 맞아야 한다

뜬금없이 채무액을 감면해 준다는 제안서가 추심회사로 부터 날아든다. 심쿵하지도 않고 솔깃하지도 않다. 이미 포기 단계라 어떤 당근책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채무연체 초기에 이런 제안을 했더라면 지금의 재기불능 상태까지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채무감면을 제안하든 채무액 특멸 감면을 안내하든 말은 고맙지만 지나간 버스 돌려세우기다.

 

채무감면 제안은 원 채권자가 할 수도 있고, 채권을 양수한 2차 채권자가 할 수도 있다. 누가 채권자가 되든 때가 늦으면 채무자는 채무감면 제안에 응하지 못한다. 배가 잔뜩 고플때 빵 한 조각을 줘야 받아먹지 이미 굶어 죽기로 포기한 후에는 두 마리 치킨을 줘도 눈길 안 준다.

 

채무감면 제안도 때가 있어
채무 감면 안내

 

채무액 특별 감면 안내 우편 내용

채권자가 직접 보낸 것도 아니고 추심회사가 보낸 것은 영 신뢰가 가지 않기도 한다.

 

채무특별감면이라는 말에 넘어가면 안됨
채무액 특별 감면 안내문: 알고나면 특별이 특별이 아니다.

 

ㅇㅇㅇ귀하
귀하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당사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채권자로부터 채권추심을 위임받아 채권관리를 대행하는 채권추심전문기관으로 금번에 채권자와의 협의를 통해 귀하에게 한시적인 채무액 특별감면 기회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사의 내부 신용회복 프로그램으로 귀하를 특별 신용회복지원 대상자로 선정하여 아래의 채무액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니 이번 특별감면 기회를 활용하여 그동안의 제약받던 사회생활과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단, 금번 지원 방안은 일시적인 제도로서 기한이 경과된 후에는 정상적으로 채권추심 및 법적절차 등의 사후조치가 수반될 예정이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아래 신용관리사와 협의하여 선의적 해결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채무현황]
※ 채권자 : ㅇㅇㅇ유한회사
※ 채무자 : ㅇㅇㅇ

채무구분 : ㅇㅇㅇ유한회사   채권관리번호 : 1919*******00001   총 채무액(법조치비용 별도) : 70,***,***   납부기한 2018. 12. **    (2018년 12월 14일 기준)
※ 연체이자 일할계산 등으로 인해 입금시점의 총채무액이 상이할 수 있으니 반드시 담당자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본 우편물은 2018년 12월 **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오니 이미 상환하신 경우에는 폐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채무불이행 시 법적 제재조치 안내 ---------------------
1) 변제 지연에 따른 연체이자가 일할 계산되어 입금일까지 가산
2) 귀하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급여, 통장, 부동산, 선박, 중장비, 전세보증금, 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등)에 대한 (가) 압류, 추심, 경매 등 법적절차 진행(민사집행법 제5조, 제61조, 제78조, 제172조, 제188조, 제223조 등)
3) 재산명시(채무자가 전재산 목록을 법원에 제출토록 강제),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법원 결정으로 채무불이행 사실을 관공서, 금융기관에 제공, 비치), 파산신청(채권자 신청에 의한 법원의 채무자 파산선고)등의 강제집행 진행(민사집행법 제61조, 제70조,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94조 등)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얼마나 감면해 준다는 걸까. 연체이자액? 원금 제외한 이자 연체이자? 원금까지 대폭 감면? 빨간 글씨 내용은 은근히 우편물을 뜯어보라는 꼬임 같다.

 

빨간글씨 좋아하는 채권추심회사
본인외 개봉금지 적힌 우편봉투 겉면

 

본 우편물은 본인 외 개봉을 금지함. 개봉 시는 우편법 제48조에 위배됨

우편법에 위배돼서 그래서 어쩌라고? 우편물을 제3자가 뜯어보지 못하게 할 의도라면 글씨 폰트를 크게 해야 보일 것 아닌가?

돋보기를 통해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게 작은 글씨로 인쇄해 놨다. 다시 말해서 궁금증을 유발해 제삼자가 뜯어보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혹시라도 제3자가 뜯어보는 상황이 발행되어 채무자의 항의를 받게 되면 면피용 일수도 있다. 

 

자기들은 제3자가 뜯어보면 안 된다는 경고문을 적어놨다. 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뜯어본 제3자가 잘못이다. 뭐 이런 주장을 펴겠지.

그러면 글씨 폰트를 크게 해서 가독성을 높여야지 맨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적게 적어놓고는.

 

다중채무를 짊어지고 있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채권추심을 받는다. 채무감면도 채권자마다 다르게 제시한다. 이 채무감면을 받기 전에 어떤 채권자는 전체 금액(원금+이자+연체이자)이 8백만 원 정도였는데, 1백만 원으로 퉁치자고 제안하더라. 조건은 1백만 원 일시납부, 그러면 나머지 원리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탕감해 주겠단다. 그런데 주머니에 오늘 먹을 끼니 값도 없을 때는 그런 통 큰 채무감면 제안도 못 받아들이겠더라. 이래 저래 채무자, 아니 채무불이행자는 기분이 꿀꿀하다.

 

오늘도 꿈속에서나마 나의 모든 채권자들에게 채무액의 2배씩 갚아주고 끝냈으면 좋겠다. '채권자, 채권추심사 여러분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채무를 한방에 해결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안 돌아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장기연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것들에 대한 저의 조그만 마음의 표시입니다. 갚아야 할 채무액의 2배씩 드릴 테니까 남는 돈은 오늘 퇴근하고 난 뒤 소주에 돼지고기 안주라도 좀 씹으세요. 그럼 전 좀 바빠서, 수고요.' 몸 부르르 떨다가 눈을 뜨니 우 씨! 꿈이었잖아. 아 ㅆ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