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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이혼&졸혼 찬성

8년 만에 개인 파산 면책 받은 윤모씨의 인생 극장 이야기 : 번뇌 속에 인생 깨달음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마치 나 같은 인생을 사는 인물을 볼 때가 있다. 이 세상에 또 다른 나, 도플갱어가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8년 만에 개인파산 면책을 받고 경제적 갱생 중인 윤 모 씨 얘기를 블로그 포스팅 할 기회를 얻었다. 우연히 이분의 블로그를 방문하였다가 연결이 되었는데, 어쩌면 나와 비슷하게 인생 50대에 채무연체, 채권추심 등에 쫓기며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졌는지 연민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불쌍한 사람이지만 윤 모 씨는 나보다 더 구구절절한 인생이었다. 이제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 윤 모 씨의 인생극장 이야기 : "번뇌 속에 인생 깨달음이 있다"를 윤선생님의 자전적 일기 형태로 본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윤 선생님의 생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채무의 늪에서 생사의 어느 쪽 끈을 잡을까 괴로워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는 모든 채무불이행자, 지급불능자 님들이 작은 용기라도 얻기 바란다는 것이다. 

 

윤 모 씨의 인생극장 이야기 : '번뇌 속에 인생 깨달음이 있다'에 들어가며

나는 이혼, 빚, 실업 3종 세트 보유자다.

실업→빚→이혼 순서로 3관왕이 되었다.

마치 사전에 정해진 운명처럼 순식간에 인생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가 되었지만,

그 당시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쟈샬 충동에 직면해서야 자신이 빠진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실존하는 현실이었다.

쟈샬로 이번 생을 끗 내느냐 운명의 신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느냐로 날밤을 샜다.

결정권은 내게 있었고 마음이 결정하면 실행은 지체 없이 될 것이다.

생명의 끗자락을 부여잡고 돌파구를 찾고자 밤새워 생각을 거듭하였다.

 

괴로워하는 모습
어쨌든 인생살이 괴로워하는 모습

 

지금 50대 중반이니 60이 코 앞이다.

인간망은 물론이고 사회관계망 마저 이미 끊어졌고, 새로운 인연은 맺지 않는다.

벌써부터 혼밥, 혼잠, 혼술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나 홀로 삶이 외롭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지금은 누가 옆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샤느냐 쥭느냐 문제로 지난 4년간 육체적 정신적 고행을 자초했다.

태어날 때 부터 내 몸 DNA 어디쯤에 내장되어 있던 쟈샬회피 프로그램이 제 기능을 발휘한 듯하다.

오랜 시간의 루프체인 작동 끝에 삶의 길을 가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쥭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쟈샬은 늦출 수 있을 때까지 늦추고 또 늦추고 봐야 한다.

사는 방법을 찾자. 내가 가진 동물적 본능이 생존 방법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이혼한 이후로 원룸에 살고 있다.

지난 3년간 3번 나 홀로 이사를 하였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같은 지방에서도 월세가 가장 싼 곳으로 떠밀리며 옮겨갔다.

원룸의 주거여건은 모두 비슷하다. 주변 생활환경이 다를 뿐이다.

역세권, 외딴곳, 주택가, 유흥가 등으로 주변환경에 차이가 난다.

 

내가 거쳐간 원룸의 이웃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곤궁했다.

구체적 실상을 일부러 까발리진 않지만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인생 50년 정도 살면 지천명이니 내 스스로가 점쟁이다.

몇 마디 나누는 대화 속의 떨리는 음색과 눈동자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상대의 처지를 눈치챌 수 있다.

 

5,60대 나 홀로 원룸족이라면 뻔하지 않겠는가.

이혼, 빚, 실업, 3종 세트 중 2개 이상은 해당될 것이다. 2관왕.

이런 원룸족의 라이프스타일은 티가 난다. 보통 직장인들과는 일상의 동선이 다르다.

불규칙한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인다. 하루 버티고 또 하루 버티며 사는 생활의 연속이니 생활패턴도 랜덤 한 것이다.

 

 같은 원룸 건물에 살아도 드러내 놓고 교류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나도 옆방의 사람과 의도적으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얼굴을 마주치기도 하지만 조건반사처럼 눈길을 피한다.

어색함을 피하는 방편으로 "안냐세요?" 라고 의례적인 말을 내뱉지만 답 인사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내 이웃 원룸의 출입문은 늘 닫혀 있다.

방안에서는 마음의 문도 닫고 있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했으니 슬픔과 좌졀이 일상일 것이다.

잦은 음주와 우ㅜ울증으로 몸과 정신은 동시에 망가져 간다.

 

살고자 하는 미련과 쥭고자 하는 자존이 때를 가리지 않고 싸운다.

쥭음을 생각하고 쟈샬 도구도 마련해 두고 있다.

쟈샬 실행을 위해 봐 두었던 장소에 갔다가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번민이 반복되면 쥭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삶을 끗내기 전에 삶이 나를 떠나기를 바라게 된다.

이생망을 인정했으니 이미 내 목슘은 저승사자의 것이다.

잠들어있는 동안 나를 데려갔으면 하고 빌기도 했다.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샮의 끈을 놓으리라 다짐했다.

 

애들이 없었다면 이미 샮을 끝냈을 것이다.

자식은 내 삶의 구원자인가 내 삶의 멍에인가 헷갈린다.

부처님은 출가에 '장애'가 된다고 아들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다.

물론 나중에 생각을 바꾼다. "왕손이 있으니 왕의 대가 끊길 걱정 없이 출가할 수 있다."

우리네 보통 사람은 자식 때문에 못 쥭는 것이 아니라 자식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부모로서 자식의 비빌 언덕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트라우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선에 서서 내리는 결정은 명확하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쥭게 된다. 자기 쥭음을 스스로 앞당길 필요가 없다.

이생망의 망상을 여생 희망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제가 채무라면 돈 벌어 갚으면 된다. 돈 못 벌면 다 못 갚고 쥭는 거다.

문제가 이혼이라면 혼자 살면 된다. 50대 중반을 넘기고 늙어가는 나이에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

수십 년간 서로 길들여진 사람끼리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지만 노년에 각자 사는 것도 괜찮다.

결혼 생활은 할 만큼 경험했다.

실직은 문제도 안된다. 은퇴를 조금 빨리 한 거고 돈 없으면 없는 데로 살면 된다.

더 이상 자존심 꺾으며 돈 벌 이유도 없고 못 벌면 안 쓰면 된다. 아니 안 벌고 안 쓴다.

 

그럼 어떻게 사느냐고?

동물 본능으로 살면 된다.

그런 능력은 수십만 년 전 원시시대부터 우리 몸속 DNA 속에 잠재되어 있다.

마음이 삶의 길로 방향을 잡으면 몸이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마음은 인간 의식으로 채우되 몸은 동물 본능으로 살아가는 거다.

본능적 삶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동물이 돈 가지고 사는가? 본능으로 살지.

 

당연히 인간의 심연에는 동물적 본능이 있다.

생존의 노하우가 그 동물적 DNA 속에 내장되어 있다.

내가 동물임을 자각하는 순간 사는 길이 열린다.

채무연체로 혹독한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보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벌떡 경기를 일으키며 깨지만 그 밤을 견뎌내면 또 새날이 이어진다. 그렇게 8년을 버텨서 결국은 개인 파산에 면책을 받아서 경제적 자유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면 극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다.

극한 직업을 가진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자.

이미 나 홀로 생활 3년이고 몸도 적응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도 많이 축적되었다.

 

하루가 절박한 누군가에게는 나의 동물적 본능에 입각한 삶의 노하우가 생존 레시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물 본능 노하우들은 이곳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5,60대 가운데 80% 보통의 인생들은 나의 자전적 인생극장 이야기를 패스해도 된다.

꼬리 끝의 20% 인생들은 나의 인생극장 이야기 : "번뇌 속에 인생 깨달음이 있다(煩惱是道場 : 번뇌시도장)"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당신이 이혼, 빚, 실직 3종 세트 보유자라면 윤 모 씨 인생극장 이야기를 끝까지 정주행해야 한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2) 채무의 늪에 빠졌어도 사람의 본능은 삶으로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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