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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넘어진 사람 넘어진 곳에서 일어서라

노장사상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 노자를 웃긴 남자

인간은 필요에 적응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결과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현실이 변하면 마음의 휴식처도 바뀝니다.

지금 접하는 고전이 현재의 내 처지를 암시합니다.

미래에서 희망을 찾듯이 과거에서는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가 힘들 때 노자가 탈출구를 제시합니다.

 

나는 코미디 드라마 보다 더 재미있게 노자를 접했네요.

아마 '도올'이라는 분을 다 아실 겁니다.

중국 소림사 10대 장문의 방장 같은 옷차림에 트레이드 마크인 쇳소리 음성으로 TV 방송에서 동양 고전을 열강 하며 웃음을 주시는 분 말이다.

그때가 Y2K,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초로 기억된다.

'노자와 21세기'라는 타이틀로 교육방송에서 강의를 하셨다.

많은 시청자들이 돌아이 '도올'의 동서양을 넘나들고 시공을 초월하는 쇳소리 열강에 박수를 보냈다. 남들이 손뼉 치니까 내용도 잘 모르면서 얼떨결에 박수 친 사람도 많았다.(나도 그랬고)

TV 화면으로만 보면 웃음이 넘치고 분위기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시청률 잘 나오는 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며 '도올'은 전국에 유명세를 떨쳤다.

나도 매주 본방사수는 아니더라도 재방송을 통해서라도 챙겨 보곤 했다.

웬만큼이라도 동양 고전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도올'의 진짜 침 튀기는 노자 강의에 감탄사 한두 마디씩은 내뱉었으리라.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에 힘입어 나도 노자 철학의 지성이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도올이 노자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강하게 디스하는 안티들이 등장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도올을 디스한 사람은 그동안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경숙'이라는 존명을 가진 재야의 노자 도덕경 고수였다.

그 당시 PC 통신에서 '구름'이라는 필명으로 글도 쓰고 동호인들과는 채팅 정도 하는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도올의 '노자와 21세기' 강의 내용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경숙 씨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도올의 노자 강의는 엉터리다. 내가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겠는데 전 국민을 상대로 엉터리 노자를 설파하는 것은 못 봐주겠다. 도올 강의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뭐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시시비비는 말 돌리지 않고 직설로 주장하는 재야고수 이경숙 씨, 도올의 노자 강의를 가차 없이 까버리는 내용으로 책을 출간해 버린다.

제도권의 '도올 김용옥'이라는 공인 9단의 노자 고수와 재야의 '이경숙'이라는 무면허 노자 독학자 간의 각본 없는 공개 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재야의 이경숙 씨는 제도권의 타이틀 보유자 도올에게 선전포고 없는 공격을 개시하자마자 도올의 아킬레스건을 난도질하는 필살기 초식을 펼쳤다.

 

나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책을 좀 읽은 축에 든다.

2000년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를 들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암에 걸려서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경숙 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를 읽은 덕분이다.

사람이 배꼽을 잡고 눈물을 찔금거릴 정도로 웃을 때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이 엔돌핀은 항암에 탁월한 호르몬이라지 아마.(의사들이 하는 말이다.)

노자를 웃긴 남자를 읽으며 하도 웃어서 내 몸에는 엔도르핀이 엄청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안 내력에 암으로 죽은 사람이 없는데 항암 호르몬까지 잔뜩 축적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암으로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 아닐까.

 

도올과 이경숙 씨 간의 노자를 둘러싼 먹물 싸움은 그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방송을 시청했던 국민들과 강호의 현자들은 지대한 관심으로 이 두 사람의 기권이 허용되지 않는 무제한 녹다운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경숙 씨의 일방적인 공격이었고 코너에 몰린 도올이 어떤 반격을 하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노자를 웃긴 남자'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며 열독 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앞으로 되돌아가서 두 번 세 번 다시 읽기 일 수였다.(무릎을 쳐 가면서!)

키득키득, 푸하하하······ ㅋㅋㅋ······.

하여튼 책을 읽는 내내 배꼽을 잡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박장 대소했다.

아, 우리의 슈퍼스타 '도올'이 이렇게 국민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었네 하고 도올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뒤로 도올의 TV 방송, 유튜브 동영상 같은 것을 끝까지 잘 보지 않고 중간중간 괜찮다 싶은 내용만 발췌해서 보고, 책, 칼럼 등 저작물은 정독하지 않고 대충 읽거나 영양가 있어 보이는 부분만 골라서 읽고 대충 패스한다. 아, 우리의 도올, 내게 많은 웃음을 안겨주신 분.)

 

50대 중후반 삶이 허망하고 미래가 싫어지는 이때가 노자를 펼칠 때다.

밀레니엄 2000년 초에 읽었던 '노자를 웃긴 남자'를 다시 읽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경숙 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는 여전히 내게 눈물을 찔끔거리게 할 정도로 엔도르핀 넘쳐나는 웃음을 안겨주었다.

도올이 동양철학의 대가에서 개그콘서트의 특별출연 주인공으로 바뀌어 버리는 내용이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경숙이라는 재야의 한문 및 도덕경의 고수는 도올이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강호의 족보없는 사파 무공으로 현란한 초식을 펼쳤다.

얼마 전에 공중파에서 도올이 무슨 강의를 하는 것을 잠깐 보았는데 '노자를 웃긴 남자'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마시던 커피를 뿜을뻔했다.(물론 도올의 강의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웃음 코드의 개그를 보자 하면 요즘은 유튜브 들어가면 도올 강의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은 세상이니까)

 

노자의 우주관 인생철학은 사실 좀 어렵게 느껴진다.

도덕경의 내용이 심오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공부가 부족하니 행간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내가 위안을 얻고 삶의 의지를 찾게 되는 부분이 있으면 되는 거지.

고전 번역의 오역과 악역의 모델이 되어버린 도올의 노자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경숙의 노자 강의를 몇 개 음미해 보았다.

내 포스팅에서 노자 도덕경에 대한 해석은 나의 지식이 아니라 이경숙 씨 같은 강호의 고수들 지식을 빌린 것이다.(도올의 노자 해석은 웃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보면 효과 만점이다)

 

도덕경 1장 첫 줄부터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내 기준으로 이해가 되었다는 말이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꼭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름으로 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닌거다."

이것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고집 피우지 말자.

단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뿐인 것에 이름이 본질인 양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내 삶이 버거울 때 노자를 손에 든다.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데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현재의 삶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노자를 찾는다면 인생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염려는 붙들어 매도 될 것이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노장사상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 상선약수 물극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