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현재가 꿈이 아니길 바란다.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까 봐 잠들기가 아쉽다.
현실이 괴롭고 불행한 사람은 현재가 꿈이기를 바란다.
잠자는 동안만이라도 잊기를 바라고 눈뜨기가 두렵다.
4~5일씩 원룸에 방콕 하며 세상의 종말을 바란다면,
'호접몽'을 음미하며 현실도피를 시도하자.
"어느 날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즐기면서 자유로웠다.
나비로 변해 있는 동안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얼마 후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장자임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장자가 꿈에서 나비로 변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로 변한 것인가?"
아마 2,30년 전쯤 별생각 없이 장자의 호접몽을 접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인생철학에 대한 소양이 바닥 수준이라,
장자의 꿈, 나비의 꿈은 그저 한가한 봄날의 은유 시를 읊은 것쯤으로 생각했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서야 이 호접몽의 진짜 속 뜻을 깨달았다.
인생의 뒤안길을 걷고 있을 때 철학은 그 진면목을 드러내나 보다.
잠자리에 들면 빨리 잠들어 나 자신이 꿈속의 나비가 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우리 현실의 삶이란 것은 꿈속의 악몽이 계속되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꿈속에서나마 나비가 된다면 그동안만이라도 현실의 괴로움은 없다고 생각했다.
장자는 꿈에서나마 '나비'가 되어 현실의 고달픈 처지를 잊고자 했다.
왜 나비였을까?
호접몽의 시대적 배경은 장자가 '칠원리'라는 하급 관리를 하던 때이다.
칠원리의 주된 직무는 옻나무 숲을 관리하는 것이다.
빗대어 예를 들면, 강원도 인제 양구 원통 깡촌 산골 600고지 숲에서 움막 하나 지어놓고 궁궐 건축용 금강송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주변에는 적막강산 인적이라고는 없는 고립감을 주는 환경조건뿐이다.
근무지역을 무단이탈하였다가는 무거운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자유를 바라지만 몸이 묶여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지,
동물이나 식물 등 자기 주변의 것들에 자신을 투영시켜 자기의 희망을 대리 실천하려 하겠지.
이때 장자의 눈에 숲 속을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들어온 거야.
감수성 예민하고 시공을 초월한 상상을 해대는 장자 같은 인간이 자기 생각을 담기에 아주 적절한 대상물이지.
'아, 나비들은 좋겠다. 가고 싶은 데로 아무 때나 날아갈 수 있으니까.'
'아, 내가 나비라면 나도 내가 원하는 데로 자유롭게 갈 수 있을 텐데.'
'아, 오늘 밤에는 꿈속에서나마 내가 나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에 잠겨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거지.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희망을 공상에 담을 수 있으리라.
호접몽은 옻나무 숲을 지키느라 깡촌 숲 속에 묶여있던 장자가 자신을 나비로 물화시켜 꿈속에서나마 자유를 누리고픈 희망을 실천하는 것이다.
낮이면 채권자들의 추심 독촉에 시달리고,
깨어있으면 인생 몰락에 대한 자괴감으로 쟈샬만 생각하니,
눈만 감으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 아닐까.
내가 그랬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그 옛날 읽었던 호접몽, 나비의 꿈 생각이 났다.
밤마다 내가 나비가 되어 어느 햇살 따뜻한 봄날의 고향 시골 보리밭 들판 위를 날고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나의 내공이 장자에 미치지 못해서 그런 건지 나비 꿈을 한 번도 꾸지 못했다.
아니, 나비가 되는 꿈은 고사하고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불면으로 눈이 뻑뻑해져서 괴롭기만 했다.
낮에는 현실이 괴롭고 밤에는 현실을 잊을 기회마저 빼앗아가는 불면이 나를 괴롭혔다.
나중에는 나비의 꿈이 아니라 악몽을 꾸더라도 제발 잠 좀 들었으면 하고 바랐다.
요즘도 나는 잠자리에 들 때면 내가 나비가 되는 호접몽을 소망할 때가 있다.
내가 본래 빈손이었다는 것을 알면 세상에 억울할 것이 없다.
"공수래공수거"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 위안을 받는 말이다.
이혼 빚 실업 3종 세트 갖추게 되면 살맛을 잃는다.
방향 없이 흔들리다가 자가당착의 임계점을 넘으면 쟈샬도구를 마련하게 된다.
이럴 때 또라이들의 또라이같은 인생철학이 필요하다.
장자는 요즈음으로 치면 또라이 인생철학의 신봉자였다.
인생의 막다는 골목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힐링할 수 있는 자가치유법을 찾아낸 것이다.
장자는 남루한 의복에 신발도 맨발에 그냥 끈으로 묶어놓은 정도로 비루한 처지였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다.
아래의 일화는 장자의 생사관에 대한 개똥철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자의 마누라가 죽자 친구인 해시가 문상을 왔다.
조문을 하려고 보니, 장자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낡은 밥상을 두드리며 젓가락 장단으로 뽕짝을 부르고 있다.
뭐 이런 또라이 같은 놈이 있나 싶어서 해시가 물었다.
"야, 짜샤! 그래도 평생을 같이 살고 애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낳은 마누란데 곡은 못할망정 젓가락 장단에 뽕짝은 좀 심한 거 아니냐?"
장자가 아이큐 좀 떨어지는 해시에게 자기의 개똥철학을 설파했다.
"마누라가 죽었는데 나라고 왜 슬프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누라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도 없었네.
유와 무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생명으로 모양을 바꾼 것인 거라.
마누라가 죽은 것은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된 것으로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자연현상인 것이여.
죽은 마누라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야. 본래 자기가 왔던 곳이지.
내가 슬퍼하고 운다면 우주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나는 우주자연의 이치가 4계절의 순환처럼 돌고 도는 것임을 아는 강호의 고수잖아.
그래서 나는 마누라 죽었다고 슬퍼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네."
친구 해시가 장자의 개똥철학을 다 듣고 난 뒤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젓가락 한 짝 더 가져와서 장자의 장단에 추임새 넣으며 망자의 제단에 올릴라 치던 탁주를 안주도 없이 둘이서 권커니 잣커니 비웠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이혼한 것은 본래 독신이었던 나로 돌아가는 거고,
내가 아파트 하고 퇴직금 포함 깔끔하게 날려 먹은 것은 본래 무일푼이었던 상태로 원위치 한 거지요.
50대 중후반에 실업은 뭐, 얘기할 것도 없고요. 그 나이에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종자지요.
남들보다 좀 일찍 혼자되고 빈손이 된 것일 뿐이다 생각하는 겁니다.
내 친인척, 내 친구, 내 이웃들과 자꾸 생활 형편 비교하면 살 수가 없는 겁니다.
내 또래의 누구누구가 지금 어느 고위직에 있다, 재산이 얼마다, 차종이 무엇이다,... 이런 거 자꾸 비교하면 질투심이 발호되어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친구 만나지 말고, 친인척 만나지 말고, 돈 드는 모임에 참가하지 말고, 지역 도서관에서 장자 같은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우주의 한 곳으로부터 와서 100년 안 되는 세상 여행을 하다가 우주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올 때 빈손으로 왔고 세상 여행을 하는 동안 필요한 물품을 사 모으고 짊어지고 다녔지만 갈 때는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세상 여행 중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거나 없어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몸이 가벼워 좋은 점도 분명 있습니다.
짐 많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 형편에 따라 내 형편에 맞게 여행 행로를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인생 말년에 한 말이 제게는 강한 울림으로 전해지더군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빈몸 빈손 빈 공간, 없음이 주는 편안함이 분명 있습니다.
오늘이 힘들고 내일도 분명히 힘들겠지만 장자 같은 또라이 개똥철학을 위안 삼아 가는 날까지 버텨봅시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노장사상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 노자를 웃긴 남자)
Copyright ⓒ 2023 Yun M.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