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되면 좌절하게 된다.
가난하게 태어나 억척으로 공부하고 힘들게 자리 잡아 뼈 빠지게 일했지만 결과는 공허하다.
뒤늦게 집착을 버리고 모든 걸 내려놓으려 하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이 고통을 일깨운다.
여기서 밀려나면 절대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비워야 할 것은 비워야 탈출구가 보이게 된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라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시라.
장자에 집중한다. 장자를 음미한다. 내가 장자가 된다.
장자는 '명(命)'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명은 필연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 우주의 순리 같은 것이다.
장자는 명을 인정하고 그것을 따르면 편안해진다고 한다.
패배주의와는 다르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역풍에 맞서고 역류를 거스르는 것은 젊은 시절로 족하다.
행운이 나의 것이 아니고, 일이 내 능력의 한계를 넘거든 운명에 맡기시라.
스트레스로 암 걸려 죽기 싫다면 제 말을 명심하시라.
(장자에서 '대종사'를 음미해 본다)
자여와 자상은 친구였다.
장맛비가 열흘 이상 내리던 어느 날 문득 자여가 생각했다.
'아마 자상은 굶주려 병들어 있을 것이다.'
자여는 밥을 싸들고 자상을 찾아갔다.
자상의 집에 이르자 노래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가야금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소리를 내기도 힘겨운 듯 빠르게 노래를 이어갔다.
자여가 들어가 물었다.
"그대의 노랫말이 어찌 그런가?"
자상이 대답했다.
"나는 나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존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찾아낼 수 없었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라겠는가?
또 하늘은 무심히 덮어주고 땅은 무심히 실어주니, 천지가 어찌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겠는가?
나를 이렇게 만든 존재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네.
그런데도 내가 이런 곤궁에 처하게 된 것은 아마도 운명(運命) 때문이겠지!"
장자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
세상이 부러워할 높은 벼슬을 한 적도 없고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도 없었으며 돈도 잘 벌지 못했다.
평생 가난을 달고 살았으니 늘 궁핍했다.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미관말직을 잠시 지내기도 했지만 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쟁이 신세였다.
그럼에도 장자는 멘털 하나만큼은 슈퍼 갑이었다.
고개 쳐들고 똥배 내밀고 거들먹거리는 왕후장상들을 조롱했다.
학벌과 파벌로 이너서클을 만들며 잘난척하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세 치 혀로 농락했다.
스펙이라곤 내세울 게 없었지만 거침없는 행보와 파격으로 세상사람들을 희롱했다.
장자가 그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배짱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리라.
고단한 삶에 순응하고 자족하며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이 인도하는 삶에 체념한 자신을 맡긴 것이 아니다.
인생의 불행과 곤궁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한 것이므로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았다.
자상은 누구를 원망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마디로 운명에 순응한 것이다. 인생 체념이 아니다.
"빈부, 귀천의 문제는 옛날부터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순신 장군의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시에도 나온다.
"빈궁과 영달은 오직 저 하늘에 달렸으니 모든 것은 자연에 맡기리라"
내가 원한다고 부자 되고 높은 벼슬하고 하는 거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하늘이 정한 사람의 운명은 현실세계의 절대자인 왕조차도 어찌하지 못한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는 법이다."
하늘이 부자의 운명을 주지 않은 사람은 한 때 큰돈을 벌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잃고 만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잠시 부자가 될 뻔했을 뿐이다.
운명으로 점지되지 않은 사람은 시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철새들의 회귀본능이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의 운명도 필연의 제자리로 돌아간다.
장자가 바보라서 초월적 순응에 운명론을 받아들였을까요?
아닌 것은 아니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다 판단되면, 멈추시라. 포기하시라. 다른 길을 찾으시라.
그래야 스트레스로 암 걸리지 않고 '명'대로 살 수가 있다.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풀지 못할 문제에 봉착해 있으신가?
걱정을 내려놓으시라. 목표달성을 포기하시라. 타협할 방법을 찾으시라.
"필사즉생" 죽기를 각오하고 해 보겠다고 하셨는가?
아래에 제가 제대로 배운 손자병법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필사가사" 죽기를 각오한 병사는 그래 진짜로 죽고 만다. 전사자는 병참 1~10종에서 중요도가 제일 끝 자리인 10종으로 분류되지, 아마!
세상을 살다 보면 내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들에 직면하게 된다.
사력을 다했지만 입시, 공시, 자격시험에 떨어진다.
충성과 열정을 바쳤지만 승진에서 탈락한다.
온갖 뒷바라지를 했지만 자식은 기대를 저버리고 삐뚤어진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모아서 집 한 칸 장만할라치면 가족 중 한 명이 덜컥 시한부 불치병을 진단받고 입원을 한다.
고생 고생 공부시켜서 고르고 골라 결혼시킨 자식이 애를 한 둘 낳는가 싶더니 덜컥 이혼한다.
애들 다 출가시키고 인생말년에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던 계획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이혼한 자식의 애들 봐줘야 하니까.)
정해진 운명에 숨어있던 불행은 반드시 닥치는가 보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불가항력의 불행 앞에서 몸부림치며 대항해 봤자 자기 몸만 상할 뿐이다.
누구나 약속이나 한 듯 뻔한 흐름을 따라간다.
가장 먼저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주변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한다.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울부짖다가 신을 원망하고 운명을 탓한다.
매일 낮밤을 술로 지새우며 비탄하고 자신을 혐오하며 몸서리친다.
이쯤에서 한 발 더 내디디면 쟈샬로 세상살이를 끝내게 된다.
장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아니 권한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하라고.
운명을 맞받아치려고 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내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다 생각되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필연의 원리가 작동하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시라.
자연의 섭리는 개조하거나 변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거역하려 하지 말고 그냥 순응하라는 것이다.
포기할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비워야 할 것은 싹 다 비워서 저 아래 지하 3층 바닥에 내려놓으시라.
어느 순간 괴로움이 잊히고,... 시간이 흐르면,... 비워진 공간에 한 줌씩 희망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노장사상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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