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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이혼&졸혼 찬성

부부생활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사람과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듯이 부부간에도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혹자는 5,60 중노년기에 배우자가 없으면 외로움에 불행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그렇지 않다. 혼자 지낼 만 하고 혼자라서 편한 것도 많다. 늙어서까지 무늬만 부부로 지낼바엔 어차피 갈 날도 멀지 않았는데 어차피 혼자로 마무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둘이라서 오히려 불행할 수도 있다

 

부부생활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나만 조심한다고 운행 중 사고가 안 나는 거 아니다.

나만 도로교통법 지키고 양보운전 했다고 차량 사고가 안 나는가?

 

내가 방어운전에 준법운전 하더라도 상대 차량이 나를 들이받으면 사고 나는 거다.

내 뒤를 따라오는 차든, 내 옆차선의 차든,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든, 내 차를 들이받을 수가 있다.

재수 없으면 내 뒤로 15번째 뒤따라 오던 차가 14번째 뒤따라 오던 차를 추돌해도, 그 사고 여파가 내 차에까지 미칠 수 있다.

내가 모범운전수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서 운전한다 해도 반쪽짜리 안전운전일 뿐이다.

 

부부생활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나 혼자 잘한다고 이혼 안 하는 것 아니더라.

 

​세상은 변하고 이혼도 흔해졌다.

높은 이혼율은 범 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미래세대는 이혼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살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10년 전만 하더라도 TV에서 이혼을 주제로 한 방송을 보면 거부감을 느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출연자들의 말이 현실성이 있는지 공감이 가는지 살핀다.

방송에 나오는 이혼 관련 내용은 본질에서 벗어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마치 등이 가려울때 손을 뒤로하여 긁을라치면 꼭 손가락 끝이 1센티 정도 닿지 않을 때 느껴지는 짜증 같은 그런 것이다.

팔을 어깨위로 넘겨서 긁어 보기도 하고, 옆구리 옆으로 돌려서 긁어 보아도, 손가락 끝이 가려운 곳에에서 1센티 정도가 모자란다.

어깨와 허리를 비틀면서 손가락 끝을 가려운 곳에 닿으려 발버둥 치지만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해 짜증만 더해 간다.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드러내고 말하지 않는다.

이혼 경험도 없는 젊은 정신과 의사나 그저 인생 좀 오래 산 꼰대 스타일 중노년들의 자기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이혼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혼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고 씨부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결론도 틀에 박힌 듯이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부부간에는 법적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한다.

부부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이해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은근히 핀잔까지 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누가 누구에게 가르치려 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질 같아서는 그렇게 씨부리는 사람의 입을 꿰매주고 싶다.

 

아무리 부부라도 부부 한쪽이 감당 못할 채무에 쫓긴다면 법적으로 갈라서는 것이 부부 모두를 위해서 좋다고 본다.

애들이 있다면 더더욱 법적인 부부 분리가 필요할 수 있다.

허구 헌날 날아오는 채권추심 우편, 법적절차 착수 통보, 법원 발신의 등기 우편은 보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다.

사람은 유기체라 스트레스가 쌓이면 임계점에서 폭발하게 된다.

채무와 직접 관계가 없는 배우자와 아이들을 악몽의 현장에서 보호 분리시킨다는 생각으로 이혼하면 된다.

채무를 진 당사자만 따로 나와서 온 몸으로 채권추심을 감당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위대한 경제인이셨던 H 그룹 창업자 J 회장님의 말씀을 차용해 보겠다.

"해봤어?"

정말 불세출의 위인은 다르다.

방송에 나와서 이혼에 대하여 조언하는 사람들은 이혼해 보기나 하고 저리 씨부리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참고 살아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고 말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부부생활에 대하여 평가하고 재단할 자격은 없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저 여인을 돌로 쳐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응용하여 말해 보겠다.

"너희 중에 현재의 결혼 생활이 진짜 행복한 자, 이혼한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어라."

 

인생은 답이 없다.

그저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누구나 처해진 여건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 식고 증오가 쌓여가는데 법적 결혼 관계를 지속한다면 황혼기에 비극을 맞을 수도 있다.

비극의 씨앗은 그 싹이 자라고 뿌리내리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좋다.

부부 두 사람을 위해서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이 사회를 위해서도, 국가와 세계, 온 우주를 위해서도 좋다.

 

인간이라는 생물 종자가 태초부터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다.

인류의 600만 년 생존기간에서 0.1%도 안 되는 최근에야 결혼제도가 생겨났다.

신석기시대까지만 해도 결혼제도라는 것이 없었다.

 

전쟁이 없을수록 남자의 가치는 하락하고 여자의 가치는 상승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1950년 6.25 전쟁 이후 전쟁 없는 기간이 70년이 넘게 흘렀다.

남자보다 여자의 말발이 더 먹히는 세상이다.

 

십계명에도 "남의 재산이나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말은 있지만 남의 남자를 탐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여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여자의 성적 자율권이 확대되고 있다.

여자가 마음을 돌리면 남자는 붙잡지 말아야 한다.

남자들은 차라리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50세만 넘어도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인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나이에 너무 일찍 죽었다고 동정의 말을 한다.

나는 일찍 죽은 그 사람들이 오히려 부럽다.

 

부처님은 가고 나면 다시금 이 세상에 오지 않기 위해 깨달음을 수행했다.

중생들에게 자기가 터득한 깨달음을 가르쳐주기 위해 80세까지 길 위를 전전했다.

 

지구 역사 45억 년을 경부고속도로에 비유하자면, 인간 수명 100년은 경부고속도로에서 8미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10년 더 사나 10년 먼저 죽으나, 20년 더 사나 20년 먼저 죽으나 차이가 없다.

30년 40년 50년 이라도 마찬가지다.

달팽이 뿔보다 짧은 인생에 부부간 아귀다툼은 일찍 끊을수록 좋다.

 

이혼함으로써 앞으로의 10년, 20년, 30년에 겪을 삶의 괴로움을 빨리 벗어난 것이니 한편으로 보면 이혼은 오히려 축복받을 일이다.

5,60세까지 살았으면 오늘 죽어도 크게 억울할 것이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평균수명이 40세가 될까 말까였다.

5,60세쯤 살았으면 아쉬울 것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자기 인생에 어떤 재단을 가하려고 용쓰지 마라.

 

이름 모를 산허리에 합장되거나 쌍분으로 나란히 누워 있는 부부 무덤을 보면 좋게 보이는가?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승에 가서까지 다시 만나서 살기를 바라서 쌍분으로 누웠는가?

또다시 부부의 연으로 만나려고 합장되거나 쌍분으로 누웠다면 나는 반대일세.

빛바랜 비석에 새겨진 부부 이름을 보면 솔직히 나는 연민이 느껴진다.

다음 생에서는 다른 사람 만나야지, 또 그 사람을 만나다니.

그 사람이 지겹지도 않은가?

또 그 사람 만날 거면 뭐 하러 다시 태어나려고 하나.

 

나는 애들한테 나 죽고 난 뒤에 제사 지내지 말라고 한다.

전처와 다시 겸상해서 제삿밥 먹을 생각도 없다.

 

나는 다음 생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설사 다음 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승에서 맺었던 누군가와의 인연은

이 번 생으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과유불급이다.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어야 효용도 극대화되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부부간 인연에도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된다.

결혼초에 얼마간 죽고 못 살지, 그다음은 의무감 책임감으로 무덤덤 세월을 함께 할 뿐이다.

적당히 살았으면 적당한 시점에서 관계를 끊어 주어야 다음 인연이 흥미롭기도 하고 더 살고 싶어 진다.

그래야 갈 때도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간다

 

몇 년 전에 모친상을 치렀다.

모친의 유골은 화장하여 선산에 봉분이 없이 평장으로 매장했다.

무덤 앞에 조그마한 표지석만 하나 두었다.

우리 형제가 죽고 난 뒤 손자 세대는 벌초라든가 묏자리 관리라든가 부담 없게 했다.

 

모친의 음택 조성을 하는 와중에 부친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으면 너들 엄마 옆에 여기가 내 자리가 되네."

그 순간에는 형제간에 별말이 없었다.

 

선산에서의 장례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먼저 하산하기 시작했다.

부친께서 먼저 산을 내려가시고, 우리 형제들이 거리를 두고 뒤 따라서 하산하는 중이었다.

그때를 기다려 내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만약에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 옆에 아버지를 모신다면 나는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살아생전 두 분 사이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실 테고, 저는 두 분이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는 거 절대 반대입니다."

"아니 엄마 보내드린 오늘 이 순간부터 두 분이 다시 만나는 거 절대 반대입니다."

누님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동의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하듯이 말했다.

"아니 다음 생이 아니라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절대로 어머니와 다시 마주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버지 유골은 어머니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셔야 합니다."

"두 분을 최대한 떼어 놓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진짜 효도입니다."라고 내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형님이 약간의 인정 어린 말씀으로 아버지를 변호하셨지만 다른 형제들 중 누구도 내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형제들 간에 내 의견에 대한 잠정적인 동의가 구해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절대로 쌍분으로 나란히 눕지 않게 될 것이다.

"살아생전에 박대당하며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돌아가셔서 만이라도 원망스러운 아버지와 함께하지 않도록 이 아들이 확실히 두 분 사이를 떼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우연으로라도 다시 아버지를 배우자로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아버지에게 구박당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런 저의 생각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나무라실 건가요?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셀럽들 유명한 사람들도 이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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