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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남들과 다르게 생각&세상이 틀렸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고 백년해로 하기는 어렵다

배우자에게는 돈 복이 없었다.

내게는 월급쟁이 돈 복이 있었다.

물론 결혼 당시에는 두 사람 모두에게 돈 복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 같으면 사주팔자에 돈 복 없는 K 여사와 결혼은 재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과 여, 가난한 사람끼리 만나서는 희망이 없다.

열심히 노력하여 살림을 불려 나가면 된다 하지만,

글쎄 그 인생살이라면 기약 없이 이어지는 쪼들림의 대물림으로 마감되지 않을까.

여하튼 지금의 세상 보는 안목이라면 결혼 상대자를 고른다면 K 여사는 아닐 확률이 더 높다.

첫 결혼 상대자 조건은 첫 직장 조건처럼 3가지이다.

돈이 많던가, 인물이 엄지 척이든가, 생활력 슈퍼우먼이든가, 하여야 한다.

3가지 조건을 다 갖춘 배우자를 얻는다면 조상 3대에 걸쳐 내리 선업을 쌓았거나, 전생에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한 애국 애족 영웅이던가 일 것이다.

3가지 조건 중에 2가지 조건만 갖추었어도 '베리 굿'은 아니더라도 '굿'은 된다.

최소한 1가지 조건이라도 갖추었다면 뭐 그런대로 평타치 결혼은 한 것이다.

만약 3가지 중에 1가지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무조건 그 결혼은 피해야 한다.

인간 평등, 모두가 존엄,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 이런 시험 답안으로만 골라야 할 공자님 단골 레퍼토리 같은 말은 하지 마시라.

3가지 중에 1가지도 해당 안 된다면 무조건 다른 짝을 찾아 나서야 한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돈이 없는 빈손 커플이라면 그 결혼은 절대 반대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고생바가지를 8톤 트럭 두 대 분이나 가득 채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쪼들리는 삶을 참아내는 생활의 달인, 인내력 테스트에 참가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3가지 중 1가지도 해당되지 않았던 거 같다.

1가지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K 여사의 인물이 엄지 척은 아니지만 '중상' 정도는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관적 평가다. 내 시력은 난시에 중고도근시까지 겹쳐서 좀 부실하다.)

3가지 중에 0.5가지가 해당되었다고나 할 수 있겠다.

K 여사가 나의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절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카운터펀치를 내게 날릴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뭐가 있었는데?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받아서 결혼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 하고 사이코틱한 가학성 표정을 지으며 시니컬한 한방 멘트로 면상을 치고 들어올 것이다.

한창 혈기 왕성 방자하던 20대 후반에 결혼했으니

사랑만 있으면 다른 것은 얼마든지 바꾸고 만들어 가며 늘려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정도 한 이불속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보고 난 뒤에야 이 사람과 함께 재물을 모아서 알토란 같은 살림살이를 늘리고 부의 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과는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있어도 고난은 같이 할 수 없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K 여사다.

가난한 시절에 어려움을 함께 겪는 조강지처가 아니라 즐거움만 함께 할 수 있는 언제라도 이혼도장 찍을 수 있는 반쪽이었다.

아, 내 팔자야 지지리 복도 없지.

결혼 초입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첫 결혼을 물리고 다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골치 아프고 신경 쓰이는 결혼을 다시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결혼을 또 해야 할까 봐서다.

차라리 역사상 악처 반열에 든다는 소크라테스 마누라, 심봉사 마누라 뺑덕어멈에 필적하더라도 그냥 계속 살고 말지 두 번 다시 결혼하고 싶지 않다.

뭐 대단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다시 결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결혼 후 1년 정도 지나면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혹'이 생기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내 생에 봄~날은 간다."가 되어 버린다.

나는 결혼하고부터 이혼할 때까지 이혼한다든가, 재혼한다든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혼이라는 말은 K 여사가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원인의 많은 부분이 내게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했으니 이혼이 부부 일방의 의지나 문제 제기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혼에 있어서 최소한 절반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다.

하여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죽을 때까지 해로하겠다는 결혼식 때의 부부간 맹세는 K 여사가 먼저 깼다. 시간차를 두고 나도 맞장구를 쳤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그 후과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치르게 된다.

이혼을 하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파투를 냈어야 하는데,

그 뒤에라도 다툼과 갈등이 고공행진을 할 때 과감하게 이혼했었어야 했는데,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서 인생의 황혼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50대 중반이 되어 결국 이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본전 생각이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매몰원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이다.

손 털고 나와야 할 때 그놈의 매몰원가, 본전 생각에 끌어안고 버티다가 낭패를 보게 된다.

이혼한 후에야 인생론을 철학하며 나름 수양과 독학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배우자에게는 돈 복이 없고, 나에게는 월급쟁이 돈 복 정도만 있다는 것을.

나와 K 여사는 서로가 상생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상극하는 관계라는 것을.

나는 하늘이 주는 복에 만족할 수 없었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많은 돈 더 큰돈을 바랐고, 결과는 폭망이었다.

더 많이 벌어서 더 잘 쓰려고 했는데, 대충 벌어 잘 쓸 수 있는 복도 걷어찬 꼴이 되었다.

나 혼자 잘 살자고 위험성 있는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 밝혀둔다.

실패한 자의 주장은 자기변명으로 치부될 뿐이다.

실패한 자의 침묵이 그나마 상대의 분노에 번져가는 불길을 잠재운다.

글로써나마 여기서 짚고 넘어간다. 절대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K 여사는 알뜰하지도 않았고 살뜰하지도 않았고 지극정성 내조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결혼 후 이혼하기까지 전업주부로 지내는 20여 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해피한 입장이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혼 후 50살이 넘은 나이에 밥벌이 생활전선으로 떠밀리고 나서야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입장이었던가를 깨닫기 시작하는 듯하다.

큰 애 말로는 TV에서 전업주부라고 소개되는 여자가 나오면 '팔자 좋은 년'이라고 한다니 사람이란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는가 보다.

누구의 말도 깨달음을 줄 수 없다. 오직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도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하셨다.

이혼하기 전까지는 K 여사 자신이 주야장천 '전업주부'였다.

백화점 쇼핑에, 수영에, 가끔 골프에,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거실에 배 깔고 한숨 당기고, 습관적으로 매주 찜질방 가서 뱃살 비계 기름 빼고, 그러고도 남편 말은 잘 안 듣고 바가지 긁어서 남편 사회생활 전투력 약화시키고,...

아, 자꾸 말하면 나만 쪼잔해지는 거 같아 고만하련다.

자기가 전업주부일 때는 내 손 안의 행복을 못 느끼다가 이혼 후 떠밀려서 밥벌이에 나서고 나서야 집에서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투덜투덜 불평해 가며 살림만 하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시절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은 '비가역적'이라 '역진불가'다.

K 여사! 어쩌나, 이제 그런 시절로 돌아갈 가망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행복도 불행도 자기 탓이다.

깨달은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

금실이 좋았던 부부는 일방이 죽어 사별하면 빈 곳이 허전하여 재혼을 하게 되지만, 사이가 나빴던 부부는 이혼 후에도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것이 속 편하니까.

실제 겪어보니 그렇다.

(윤 모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모든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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