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 속에 복(福)이 깃들어 있고 복(福) 안에 화(禍)가 숨어있다"
- 도덕경 58장 -
우리 모두는 언젠가 백수 실업자가 된다
우리네 인생 별거 있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했다.
태어날 때 백수였으니 죽을 때 백수로 돌아간다.
실업자 백수라서 힘든 게 아니다.
실업자 백수가 안되려니 힘든 것이다.
세월이 인생을 이끄는 대로 상선약수(上善若水)했으니 물처럼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50대 이후 실업자는 백수가 아니라 은퇴자이다.
요즘의 사회 여건이라면 조금 빠른 은퇴일 수는 있다.
남보다 빨리 은퇴한 것은 복이라 생각한다.
인생 꼬인 것이 아니다.
50대 중반이면 최소한 25년 정도 취업자였다.
얼마나 실업자가 되어 싶었는가.
어떤 이유로든 직장을 그만두면 후련하다.
먹고사는 문제로 스스로를 옭아매지만 않는다면 좋기만 하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자리 끌어안고 버티는 사람을 보면 도저히 이해 불가다.
누가 뭐래도 난 직장 그만두고 나니 얼씨구나 좋았다.
50대 중반에 명퇴라고 하지만 나는 은퇴라고 바꾸어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은퇴는 다른 사람의 입문 기회가 된다.
한 시대의 은퇴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준다.
은퇴와 자유가 입문과 기회로 상호교환하며 대체되는 것이다.
은퇴 후 약 6개월(18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았다.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실업 급여였지만 내게는 자유의 선물이었다.
세상은 실업급여라고 했지만 나는 자유의 선물로 생각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은 50대 중반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낀 세월이었다.
내 인생에 다시는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지금으로선 잊기로 한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실직을 하면 새로운 직장을 찾기까지의 생활안정 자금, 취업촉진수당이라 할 수 있다.
실업급여의 초점은 빠른 시간 내에 재취업하도록 하는 데 있고 그래서 명칭도 '구직급여'라고 한다.
근로 의사 및 능력이 있지만 비자발적으로 실직 상태가 되어야 한다.
회사가 망해서 직장을 잃던가 경영 목적의 정리해고를 당하든가 해야 한다.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면 실업급여를 주지 않는다는 말씀.
직장상사 또는 직장동료가 마음에 안 들어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오는 경우는 실업급여를 지급받지 못한다.
내가 잘못을 저질러 회사의 문책을 받고 쫓겨나는 경우에도 지급받지 못한다.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하는 데도 취직이 되지 않는 상태라야 한다.
실업급여받는 것도 그 자격이 만만치 않다.
욱하는 성질에 자기가 자기 발로 지금 자리를 때려치우고 나와서는 실업급여 못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나는 실업급여받는 6개월 기간이 직장 다닐 때 보다 더 좋았다.
나는 생리적으로 직장생활 조직생활이 맞지 않았던 거 같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을 혹하게 하는 조기 재취업수당이라는 것도 있다.
구직급여를 받는 사람이 재취업을 빨리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구직급여를 받는 사람이 잔여 소정급여일수의 2분의 1 이상을 남기고 재취업하게 되면 미지급 일수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급여를 일시에 지급하는 것이다.
얼핏 복잡하다 생각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일찍 재취업하면 남아있는 실업급여받을 기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실업급여를 목돈으로 한꺼번에 준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젊은 사람들은 가능한 재취업을 빨리해서 조기 재취업수당을 받는 것이 괜찮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이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길고 창창하니 실업 기간이 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전혀 조기 재취업을 원치 않았다.
조기 재취업이 될까 봐 일부러 구직활동도 실업급여 기간 동안에는 재취업이 안되도록 불성실하게 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거자료를 확보하는 정도 이상의 진심 어린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사전에 직장생활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은 돈을 벌더라도 내 자의로 내 주관대로 돈을 버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직장 다니는 동안에도 하루빨리 백수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구직급여를 받는 동안의 실업상태가 싫지 않았다.
가족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주식투자와 파생매매를 전업으로 하려고 생각했었다.
퇴직금과 일부 여유자금 4~5천만 원이면 충분히 생계비 이상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결과론적 상태를 지적하며 내가 무책임했다고 질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비난의 말을 할 수는 없다.
내 능력으로 충분히 주식매매와 파생매매를 전업으로 하여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 실업자 백수/백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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