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궁합을 보았다. 그것도 6번이나.
물론 내가 아니고 전처가 장모 손에 이끌려(아마 이끌고) 가서 본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찜찜했다.
궁합이 좋다는 3곳, 나쁘다는 3곳으로 3 대 3 동점이었던 것이다.
20대 후반 혼기를 꽉 채운 데다 동생들에게 떠밀리는 똥차 신세였던 전처는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본인보다도 밑에 동생들이 더 부추 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 봐도 뻔하다.
장인 장모도 자식들 결혼이 줄줄이 사탕으로 밀려 있는 상황이라 첫째인 K 여사를 중고차 값에라도 처분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집안의 골칫거리를 처분한다는 대의를 앞세우다 보니 궁합 결과가 반반으로 확실한 부결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장 파장 때 되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반값에 팔아치우는 떨이 물건을 내가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아마 하늘이 나를 외면하는 순간이었으리라.
대학 재학 중에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뒤에는 직장 잡는데 목숨 걸고 취직시험공부만 하느라 사회 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고나 할까.
다른 거 다 잘 해봤자 뭐 하나. 남은 인생 결정짓는 배우자 선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범한 것을(?).
세상은 지식이나 실력이 아니라 사람과의 인연, 운빨에 달렸다는 것을 그 당시에 는 몰랐다.
조상운, 부모운, 형제운, 배우자운, 자식운, 재물운, 건강운,...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인연, 운빨 들이다.
K 여사와 이런 저런 트러블과 밀당 끝에 결혼을 하였다.
그날 이후 평온한 가정생활은 남의 집 얘기일 뿐이 없다.
물과 기름이 아니라 물과 물의 만남인데도 이틀이 멀다 하고 깨소금 볶는 소리는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고 우리 집에서는 밥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같은 물끼리의 만남인데 그랬을까 싶다.
'양수'와 '음수'의 만남, '임수'와 '계수'의 만남인데도 결혼생활 내내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50대 중반 가진 재산 다 말아먹고 이혼하고 난 뒤 하도 답답하여 내 사주팔자가 어떤지 파고들었다.
천간 지지의 음양오행, 사주팔자 운명 코드를 열공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운명을 간명할 수준으로 내공이 쌓였다 싶을 때가 왔다.
웬만한 땡중들 보다는 내가 도력이 높다는 확신이 섰다.
내 사주팔자와 배우자의 사주팔자 간 궁합을 직접 체크해 보았다.
나의 조상운, 부모운, 형제운, 배우자운, 자식운, 재물운, 건강운을 조심스레 감정해 보았다
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땅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숨을 멈추었다.
지금의 내 처지가 결국은 내 팔자 탓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 운명이 이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 때문이라 생각하니 차라리 위안이 되고 견딜 수 있기도 했다.
내 사주팔자를 등급으로 매기면 '보통' 내지 '중하' 수준으로 그저 그런 사주였다.
'임수'가 '묘월'에 태어난 것은 왕성한 활동 시기를 지나고 열기가 식은 때에 태어났음을 가리키는 사주다.
한마디로 좋은 시절은 다 지났고 잔치 끝나고 뒷정리하는 맥 빠진 시절을 살아가야 하는 운세라는 것이다.
나의 일주 '임술'은 한 성깔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임술'이라는 '괴강살' 이 한 성질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힌트다.
괴강이 한 개이니 좋게 말하면 성격 화끈한 거고 도가 넘었다 싶으면 개차반 성질을 드러내는 놈인 것이다.
내 사주팔자의 일주 '임술'은 백호대살에 해당되기도 한다.
요즈음으로 쳐서 크게 피를 보는 교통사고 같은 것을 당하는 흉살이다.
군대생활 중에 교통사고로 사단 의무대 입원하고 몇 달간 통원치료받았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다.
결혼 후에는 설 명절에 큰애와 전처를 태우고 고향을 다녀오다가 경부고속도로에서 크게 사고가 나서 일가족 3명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혼자 눈길에 미끄러져서 낸 자차 사고라 차량 파손에 따른 손해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 당시에는 왜 나에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사고가 두 번씩이나 났을까 의아했다.
지금은 내가 왜 두 번의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인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쯤에서 다 같이 한번 놀라 자빠져 주시기 바란다.
아 글쎄, 전처의 사주팔자에도 '백호대살'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K 여사의 사주팔자 일주는 '계축'으로 '백호대살'에 해당한다.
백호대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는 흉살이 K 여사의 사주에도 들어있었다.
부부가 모두 백호대살을 품고 있었으니 내가 피를 보는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겪은 것이다.
그나마 나와 전처의 운명이 죽을 때가 아니었던지 지금까지 숨을 쉬고 있다.
내가 진즉에 배우자의 사주팔자를 알았더라면 그녀와의 결혼을 피했을 것이다.
돈 복 없지, 백호대살 있지, 남편을 극하는 사주팔자이지, 장모가 왜 이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추임세,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흉내 내봤다)
어쩌다가 이런 여자와 부부연을 맺었는지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결혼초에 전처에게 말하곤 했다. "똥차로 밀려있던 당신을 내가 구제해 줬다."
설사 이 말이 맞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런 말로 위안을 삼은 들 무슨 배 고픈 빈속으로 방귀 뀌는 소리인가.
이미 혼인신고는 했고, 반값 떨이로 샀지만 반품은 불가한걸.(혹시 몰라 밝혀둔다. 혼인신고는 결혼하자마자 K 여사 혼자 가서 했다.)
나는 궁합 같은 거 신경도 안 썼지만, 전처는 결혼 전에 6군데에서 궁합을 봤다.
좋다 나쁘다가 3 대 3으로 나와 50프로 확률이었다고 했다.
인륜지대사이니 위험회피 차원에서라도 나와의 결혼은 피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궁합의 좋고 나쁨이 반반으로 나오면 딸 가진 엄마는 그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나?
줄줄이 순서를 기다리던 동생들에게 똥차로 구박받는 것이 서러워서 K 여사가 고집을 부려 덜컥 나와 결혼했다고 짐작된다.
뭣도 모르고 눈이 삔 나는(난시에 중고도근시ㅠㅠ) K 여사 노처녀 탈출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장모님도 그 당시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동생들은 결혼 상대자를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며 재촉하는데 제일 큰 애가 결혼 기약이 없지.
50프로 확률의 사윗감이라도 언감생심 따질 형편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팔자 탓을 해야지 누구를 탓 하겠는가.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운명론으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 부부 궁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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