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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이혼&졸혼 찬성

이혼해보니 별거 아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배우자의 채무 때문에 이혼한 것이다. 어쩌면 채권추심에서 떼어놓기 위한 배우자와 아이들에 대한 배려하는 생각에 이혼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혼했지만 60대를 바라보는 50대 후반 줄이라 어차피 마주치게 될 홀로서기가 좀 빨리 당겨진 것뿐이리라.  

 

이혼을 두려워 하지 마라 해보니 별거 아니다 

부부간 관계 유지가 애들 때문이라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혼하는 것이 황혼의 더 큰 불행을 예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50대, 60대, 70대, 80대, 90대, 100세에 이르러 증오가 폭발하고 캴 부림 나고 됵약을 몰래 타는 비극을 피하는 예방주사 일 수 도 있다.

"사랑은 식어도 정으로 산다"는 것은 옛말이다.

몇 십년 한 이불 덮고 잔 배우자라도 조심해야 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하겠다"라는 결혼식 때 언약은 잊어라. 검은 머리 파뿌리 되기 전에 홀로서야 한다.

"쥭음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라는 서약도 기억에서 지워라. 쥭음이 갈라놓기 전에 갈라서야 한다.

내 머릿속 내장 하드에 저장된 그 자료를 찾아 없애라. 걱정 말고 Delete 키를 눌러라.

 

세상인심이 변하듯이 부부간의 인심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혼식 때의 맹세나 선서를 어겼고 배신자가 되었다는 죄책감은 갖지 마라.

지금까지는 같이 동행하였지만 60대 넘어서는 장담 못 한다.

다툼이 잦아지고,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면, 없을 때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아내나 남편 어느 쪽도 백년해로를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 후 30년 정도 살던 옛날이 아니다.

재수 없고 의지력 박약하면 결혼 후 6,70년을 같이 살아야 하는 시대다.

솔직히 말해 2,30년은 어떻게 버텨 보겠는데 6,70년은 힘들다.

보통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감당할 수 없는 세월이다. 무기징역에 가까운 결혼기간이다.

 

부부관계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부부대화 보다 솔깃한 관심거리가 널려 있다.

참고 참으며 6,70년을 동행해야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견디기 힘든 고뮨이다.

변사또에게 주리 틀리는 춘향이처럼 남원 고을 동헌 마당에 끌려가 곤장 100대를 맞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니 남은 여생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 이건 너무 나간 것 같으니까 취소한다.)

 

남자 입장에서 이혼은 미리 독립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60세 이후에는 아내가 있으나 혼자 사나 거기서 거기다.

철학 좀 한다는 인간들이 "늙어서 아내가 없는 남자는 불행하다."라고 씨부리는데,

세상물정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책상머리 좀생이 철학자라는 독고다이 인생들의 말은 무시하시라.

내가 겪어보니 전혀 맞는 말이 아니다.

지가 무슨 인생을 찰지고 오지게 살았다고 "늙어서 아내가 없으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단정하나.

지가 늙어서 아내 없이 살아보기나 했나?

아니 지가 늙어서 아내와 함께 살아보기나 했나?

늙어 보지도 않은 인간이 늙은 후의 일을 그렇게 예단하는가 말이다.

 

늙어서 아내가 있거나 없거나 두 가지를 다 경험할 수는 없다.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늙어서 배우자가 있는 것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상호 배타적이다.

젊어서 배우자가 없으면 좀 그렇지만 늙어서는 없는 것이 마음 편한 것도 오히려 많다.

내가 경험해 보니까 배우자가 없어서 외롭거나 고독하거나 쓸쓸하거나 허망하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돈이 없으면 궁색 맞고 비참하고 우울하다.

 

늙은 아내는 더 이상 밥하고 빨래하고 남편 뒷시중 드는 도우미가 아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60대가 되어 혼자 독립생활 할 능력이 안되면 남은 여생 고생길이 첩첩산중, 오리무중이 된다.

50대 중반 넘어섰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미리 혼자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것도 괜찮다."

기왕에 헤어질 운명의 부부라면 빨리 헤어지는 것이 좋을 수 도 있다.

 

이혼 전에는 치열하게 싸웠다.

이혼하니 얼굴 맞대고 싸울 일이 없다.

이혼하고 나서는 애들 문제 등으로 조우하더라도 서로 말조심하게 되는 점도 있다.

더 이상 극단적으로 싸울 일이 없다.

배우자의 채무에 대한 얘기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남한테 막말 잘하지 않고 가능한 싸움을 피하려는 것과 같다.

이러저러한 일로 얼굴 맞대는 기회에 말싸움을 시작하더라도, 전쟁으로 격화되기 전에 어느 일방이 그 자리를 떠나 버린다.

떠나는 사람은 잡지 않는다.

이혼했으니 떠나는 사람을 강제로 그 자리에 잡아 둘 수도 없다.

육탄전이나 전면전으로 싸움이 확대되고 격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는 남이다."라는 점을 은연중에 인식한다.

모르는 남에게 모질게 대하지 않듯이 마음 한편에 숨어있던 자비심이 뒤늦게 나타난다.

 

집안 경조사에는 서로 배려하면 된다.

이혼은 했지만 부모 장례식 때는 배우자로 이름을 올리면 된다. 사실 내 경우 이혼 후 모친상을 당하여 상주 이름에 전처의 이름을 올려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상조 담당자가 상주 이름을 적어 나갈 때 첫마디에 전처의 이름을 대지 못하고 일단 나의 배우자 칸은 공란으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잠시 생각한 후에 전처의 이름을 며느리 이름 란에 적었다.

 

경조사를 당한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혼한 배우자의 이름을 올려라.

서로가 쥭이고 살리고 하는 사이로 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문제없다.

물론 경조사에서 이혼한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혹시 경조사의 축하객이나 문상객이 물으면 그 사람 몸이 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 된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조사 때문에 임시로 퇴원한 몸이라서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면 될 것이다.

일부러 물어볼 사람도 없지만 혹시라도 누가 묻는다면 그렇게 둘러대고 넘어가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이혼한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일부러 감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 같은 경우는 상대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혼했다고 말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별다른 것도 아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 한 사람 배우자하고 살아냈다는 것이 꼭 자랑거리 랄 수 도 없다. 끈기와 인내심은 인정해 줄만 하다.

가끔 방송에서 노년의 부부가 티격태격하며 백년해로 살아가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인 거처럼 치켜세우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그 노부부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부도 60세가 넘어가면 나 홀로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

졸혼이라는 형식이 되든 실제 황혼이혼이 되든 혼자 살기 모드로 들어가야 한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다.

나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느라 결혼했던 것이고 부부간의 그 역할은 이미 끝났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혼자 가는 연습을 해야 할 시기가 되어 하늘이 혼자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뭐가 그렇게 죽고 못 산다고 60대 이후에도 같이 붙어 있는 모습을 연출하려 하는가.

 

조선시대 그 관습적 윤리관에 목메지 마라.

그거 사람을 옥죄는 자유인을 억압하는 자기 구속적 문화일 뿐이다.

양반이라고 불린 놀고먹는 신분 집단이 피지배 집단을 이념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무지렁이 인생들을 세뇌시킨 것이다.

천부 인권을 타고난 똑같은 인간이 누가 누구의 인생을 재단하려 드는가.

 

내가 순결하고 외도 안 했다고 이혼 안 하는 거 아니더라.

내가 외도 안 했다고 배우자의 사랑도 순수하고 깊었던 것도 아니다.

 

직장 다니고 사회생활 할 때 이러저러한 연유로 비즈니스 클럽 같은 데 갈 기회가 있었다.

도우미가 나오는 술집이라면 2,3차에 대한 선택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분위기 맞춰주는 역할이 끝나면 새벽 4,5시, 아니 아침해가 밝아 오는 시간에라도 반드시 집으로 귀가했다.

한 번도 음주 가무 이상의 선을 넘는 2,3차는 하지 않았다.

분위기 깨지 않기 위해 그 3차 자리까지 동행하더라도 나 혼자 남게 되는 시간을 기다려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파트너 되는 분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지금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집에 무슨 꿀단지 숨겨놓은 놈처럼 새벽귀가를 했다.

물론 내 파트너 되어야 할 분에게는 그날의 일당이 걸린 일이므로 봉사료는 꼭 챙겨주고 나왔다.

그분이야 일하러 온 것이지 그냥 놀러 온 분이 아니니까.

집에 와서 목격하는 것은 입 헤 벌리고 침 자국 그려가며 거실 바닥 금 가도록 요란하게 코 골며 자는 전업주부 배우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생활했는데도 이혼했다.

배우자의 고소득과 건강신체와 순결이 결혼 유지의 충분조건이 아닌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상대방이 어깃장 놓으면 어쩔 수 없다.

그 당시 2,3차까지 갔던 일행 중에 이혼한 사람은 없다.

세상은 이런 것이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부부생활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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