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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남들과 다르게 생각&세상이 틀렸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만 맞으면 속도는 문제가 안된다."

무엇이건 첫 단추가 중요하다.

첫 직장, 첫 근무지, 첫 배우자,... 첫, 첫, 첫, 첫 번째가 대세를 인생을 결정짓는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 그 뒤는 보나 마나다.

첫 직장, 첫 근무지, 첫 배우자는 20~30년 뒤 인생의 성공과 폭망을 결정짓는 첫 단추이다.

지금 2,30대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주목하시라.

아무 직장이나 일단 들어가고 보자, 아무 하고나 일단 결혼하고 보자. 이런 인생 하수구에 밀어 넣는 뻘 짓 절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첫 단추 잘못 끼우고 살아갈 바엔 그냥 단추 풀어 재낀 채로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잘못된 취업보다는 무직이 낫다.

찜찜한 결혼보다는 혼자살이 독신이 낫다.

첫 직장을 공채시험으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백 명이 넘는 입사 동기들이 같은 출발선에 섰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첫 근무지를 배치받았다.

서울, 수도권, 지방, 전국에 걸쳐 신입 동기들이 각자의 첫 근무지로 흩어졌다.

같은 서울권 내에서도 강남과 강북으로 근무지가 다르다.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경기 남부권과 북부권, 신도시, 구도시 등으로 근무지가 다르다.

이후 10년이 지날 때까지도 첫 근무지가 미래 인생에 어떤 희비쌍곡선을 만들지 예상하지 못했다.

실력도 아닌 운명의 장난이 20년 세월이 흘러 입사 동기들 간의 재산 상태를 하늘과 땅 차이로 벌려 놓는다.

나 때만 해도 (라떼는)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으면 슬슬 결혼을 했다.

대략 취업 후 3년이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하거나 최소한 결혼에 트라이하는 상태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경우 대학 재학 중 군대 3년을 갔다 오는 경우로 치면 졸업하고 첫 직장 들어갈 때쯤엔 대략 26~27세 정도가 된다(대학원을 가는 사람의 경우는 2년 더하여 28~29세 정도 될 것이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남자는 30세를 넘기지 않고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첫 직장 잡으면 바로 결혼을 생각하게 되고 대충 2~3년 정도 월급을 모아서 결혼자금으로 쓰게 된다. (개인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고, 대체적으로 그 당시 사회 일반적 경향은 내가 거쳐간 과정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첫 직장, 첫 근무지에서 결혼을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배우자도 첫 직장, 첫 근무지와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 있다.

첫 직장, 첫 근무지가 강남권인 사람은 강남권에서 결혼하고 신혼집도 얻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나중에 아파트 분양도 강남권이나 강남권 인근 지역에서 받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디 지역에 한번 보금자리를 잡으면 잘 안 움직이려 한다.

신규 아파트 분양이 나와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그 인근 지역에나 관심이 크다.

강남권에 사는 사람이 생뚱맞게 경기북부나 지방 도시 같은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방에서 직장을 구한 사람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같은데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강남권이나 강북권이나 아파트 분양가나 아파트 시세가 지금처럼 차이가 크지 않았다.

다소의 분양가 차이가 나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분양받으려 하는 니즈가 있게 마련이었다.

집집마다 자동차, 개인마다 자동차 시대가 된 것은 88 올림픽 끝나고도 한참 지난 뒤의 일이니 직장과의 거리 또는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이용 편리성은 내 집 마련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였다.

당연히 첫 직장, 첫 근무지에서 가까운 동네에 첫 번째 내 집을 마련하게 된다.

아, 그 후 20년이 흐르고 난 뒤에야 80년대 학번의 인생 재테크 성적이 첫 번째 내 집 마련한 로케이션 차이에서 결판이 나게 됨을 알게 되었다.

경기 수도권도 강남권과 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그 당시 서울에는 더이상 신규아파트를 지을 땅이 없는 실정이었다.

서울 유입 인구를 소화하고 수도권의 극심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서울외곽 수도권에 100만 호 신규주택 공급 정책을 펼쳤다.

이름하여 서울의 위성도시, 수도권 1기 신도시로 분당, 일산, 산본, 중동, 평촌, 5개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였다.

당시 분양가는 5개 지역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어느 지역에 분양받을까? 보통 사람들은 다니는 직장과 가까운 지역에 침을 발랐다.

나중에 가격 상승 차이가 어떨까에 집중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뒤 서울 수도권, 강남북, 신도시, 구도시,... 아파트 시세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사람이 살고 자고 쉬고하는 집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 아파트가 강남이라고 그렇게 치솟을지를 나만 몰랐던가?

분당 같은 경우는 오죽 아파트값이 많이 오르고 기반 시설이 집중되었으면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하였겠는가?

첫 직장, 첫 근무지가 어디였느냐에 따라 첫 번째 내 집의 로케이션이 결정되었다.

첫 근무지가 분당 쪽이면 분당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첫 근무지가 평촌 쪽이면 평촌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첫 근무지가 일산, 중동, 산본 쪽이면 일산, 중동, 산본 쪽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운명의 신은 사람을 이런 식으로 차별하는가 보다.

문제는 강북지역이다.

나는 강북지역에 첫 근무지로 배치받았다.

결혼은 강남쪽 예식장에서 했고, 전세방을 거쳐 아파트 분양은 강북지역 재개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사람 심리가 일단 직장을 잡으니 꼼짝하기가 싫었다.

직장 일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그때 생각으로 이제부터 나만 열심히 일하면 남 못지않게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평가하건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직장생활에 임했다.

적금도 들고 정기예금도 들고 그냥 내 노동으로 번 돈을 알뜰히 살뜰히 모아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경제나 재테크에는 정말 맹탕이었던 것이다.

누가 물으면 경영학과 전공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책상머리 경제 지식으로 꽉 차 있었던 얼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기들 중에는 그래도 상위 20퍼센트 내에서 앞서가며 승진했고,

첫 번째 내 집 마련도 직장생활 8년 만에 해냈다.

이쯤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을 때 은행으로부터 받은 중도금 잔금 주택 대출을 다 갚았다.

세상 물정을 몰랐는지 일부러 세상 물정을 외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중년이 다 된 어느 날부터인가 의기소침 멘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IMF 사태를 거치고 회복기에 들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급반등 하고 고공행진을 하면서부터였다.

강남권, 신도시 분당, 일산의 아파트값이 하늘로 수직 상승했다.

강남권 재건축 재료가 있는 아파트가 가격 폭등을 선도했다.

대한민국 자체가 2000년대 들면서 한 단 게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를 나만 몰랐던가 이럴 수가 없다고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고 있었다.

80년대 학번의 재테크 성과는 첫 번째 내 집 마련을 한 지역, 로케이션에서 결판이 났다.

개인적인 실력도 아니고, 직장의 좋고 나쁨도 아니고, 배우자와의 금실 차이도 아니었다.

오로지 첫 번째 내 집 마련한 지역, 로케이션 차이로 2,30년간 직장 생활한 월급쟁이들 간의 재산가치 차이는 절대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더 이상 무엇을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나의 재테크 운빨이, 나의 재테크 실력이 꽝이라는 것이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증명이 되었다.

책상머리 실력을 믿고 이 세상에 칼을 들이댔으니 그나마 있던 재산마저 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터다.

오늘도 우편함에는 며칠전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내온 채권추심 우편물이 꽂혀있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인생 길 방향만 맞으면 속도는 문제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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