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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이혼&졸혼 찬성

채무 빚 때문에라도 이혼할 필요가 있었다

채무 빚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재산문제에 있어서 '부부별산제'를 채택하고 있다.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과 혼인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고,

특유재산은 부부가 각자 관리 수익하게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와이프 돈은 와이프 돈이고 남편 돈은 남편 돈'이라는 것이다.

채무는 소극적 재산이며 배우자의 채무 빚은 당연히 상대편과 무관하다.

 

이게 웬 저승사자 실업자 만드는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현실은 전혀 부부별산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하지 않은 상태라면 부부별산제는 거의 의미가 없다.

배우자 한쪽이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 유지는 불가능하다.

배우자의 채무로 인해 끊임없이 다투게 된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감당 못할 채무 빚을 진 배우자와 평온한 삶이 가능하겠는가.

 

옛날옛적 강태공의 아내는 돈 벌어오지 않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하물며 여성의 파워가 남성의 그것을 압도하는 요즘 같은 여성우위 시대에 빚진 남편을 용납할 여자가 있을까.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배우자에게나 본인에게도 좋다.

감당 못할 채무라면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다.

 

수시로 날아드는 채권자와 채권추심업체의 추심 공격을 피할 수는 없다.

본인이 피하면 추심의 그림자가 배우자나 자녀에게 드리워진다.

법의 보호막은 개인의 세세한 생활관계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채무자의 권리주장은 때리더라도 쥭지 않을 만큼만 때려달라는 읍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채무자는 빚진 죄책감에 권리주장할 처지도 못된다.

그저 빚진 채무자는 어느 시대 어떤 경우에도 죄인인 것이다.

 

채무로 인한 배우자와의 다툼을 끝내야 한다.

채권자의 추심 독촉을 피하는 것보다 배우자와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빚진 배우자가 존재하는 한 부부 간의 다툼은 끝이 없다.

부부간의 충돌은 채무를 다 해결할 때까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빚을 다 갚고 난 후에도 두고두고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다.

감당 못할 채무 빚 문제라면 이혼이 부부 분쟁 해결책의 시작이다.

이혼만이 배우자와의 이 다툼을 끝낼 수 있다.

이혼하는 게 배우자에게도 본인에게도 좋다.

일단 이혼하면 채무 때문에 면전에서 싸울 일은 없다.

배우자의 빚 문제는 남의 일이 되니까.

빚 때문에 더 이상 원망을 쌓을 일이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이혼하는 것이 끝없는 다툼을 피하는 길이다.

 

돈 문제는 돈으로만 풀 수 있다.

배우자가 아무리 걱정하고 이해해 주더라도 채무 빚을 갚지 않으면 해결된 것이 아니다.

돈 문제이므로 돈 아니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어려운 난관을 뚫고 나간다는 것은 소설 속,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빚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냉정한 현실 직시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감당 못할 빚이라면 그런 빚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다.

부부간에 죽음은 같이 할 수 있어도 감당 못할 채무 빚은 같이 할 수 없다.

TV방송에서 연예오락프로에서 가십뉴스에서 이혼한 배우자의 빚을 자기가 해결해 줬다는 얘기를 믿지 마시라.

빚을 해결해 줄 정도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는다.

위자료 대신에 빚을 갚는 걸로 했겠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이혼이 필요했거나.

빚은 부부중 당사자 한 사람이 감당하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좋다.

혼자가 되어야 빚 정리를 위한 로드맵에 집중할 수 있다.

쥭든 샬든 빚은 혼자 짊어지고 뒤집어써야 한다.

혼자가 되면 빚에 대한 대응도 명쾌해진다.

빚 문제가 나 혼자만의 일이 되고 배우자와 애들은 관계없다.

나 홀로 원룸으로 이사하면 나에게만 추심의 손길이 미친다.

빚 독촉장을 가족이 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 평화를 선물한 것이 된다.

 

각종 채권추심 독촉장이 2,3일 간격으로 날아든다.

'나 쥭엇다.' 생각하고 3년 정도 버텨내야 한다.

3년 정도가 지나면 채권추심 독촉도 뜸해진다.

그 3년 동안 관할법원으로 부터 '지급명령'도 몇 차례 받고, 채무자는 '재산명시'를 위해 법정에도 출두하게 된다.

내가 가진 재산목록을 적어내고 판사 앞에서 오른손 들고 내가 적어낸 재산목록에 거짓이 없다는 선서를 해야 한다.

이것이 '재산명시명령'이다.

지금까지 경찰서, 검찰, 법원 출입이라곤 없던 사람도 채무 빚 때문에 법원에 출두하게 된다.

 

채권추심 과정에 모든 법적조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이제 웬만한 채권추심 독촉에는 덤덤하다.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3년간에 걸쳐 멀티채무에 대한 멀티 채권추심에 원투 스트레이트 어퍼컷에 피니쉬 블로우로 난타를 당하다 보니 내성이 생긴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쟈샬만을 생각하던 마음이 한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채무 빚 때문에 쥭고자 하던 사람에게 오히려 살아볼까 하는 의지가 싹트기 시작한다. 참 웃기는 시츄에이션이다.

좌절도 깊지만 책임감도 자란다.

혼자 빚을 감당하면 오기가 뻗쳐서 책임감도 생겨나는 것이다.

하다가 안되면 쥭으면 그만이라는 결기가 생긴다.

 

쥭움은 이승의 모든 문제를 처음상태로 되돌린다. 영혼을 리셋시켜 버리는 것이다.

끔찍한 샬인자도 쥭게 되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는다.

쥭은 사람은 이승의 판관이 처결할 수 없는 것이다.

저승으로 간 사람에 대한 처결은 저승사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쥭음을 생각하게 되면 재기 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생겨난다.

원치 않던 빚이지만 내 몸의 암처럼 같이 안고 가리라 마음먹는다.

암 걸린 사람이 예측불가의 담보 없는 생명을 이어가듯 채무자도 갚을 길 요원한 채무 빚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위적 자기 논리도 구축한다.

세상에 빚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돈으로만 빚을 지는 것이 아니다.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빚을 져야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빚지고 사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나름대로 뭐 좀 해 보려다가 빚진 것이다.

기왕에 빚 지고 사는 거 쥭지 않는 한 다시 용기를 내야 한다.

 

돈으로 진 빚은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해결될 것이라 믿기로 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결국 빚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시간이 흘러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해결되리라.

돈으로 해결되든 내가 쥭어 해결되든.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이혼한 후에라도 마음이 변하면 다시 합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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