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상환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개인파산이나 한정상속을 생각하게 된다. 이미 나이가 50대 후반이라면 채무의 무게 앞에서 재기할 생각을 접게 된다. 남은 여생에 경제적 갱생은 불가하며 내 복은 여기까지임을 받아들인다. 산속의 자연인이 될 것인가 도심 속의 자연인이 될 것인가 어떻게 불리든 개인 취향에 따라 그 길로 들어서야 할 수 있다. 셀프 실종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50대 후반에 차라리 재기할 생각을 접는다
지난 인생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뭐든 열심히만 하면 남 못지 않게 잘 살게 되는 줄 알았다.
행복한 가정에 받듯한 아이들은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솔선하여 모범을 보였으니 상응하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기 확신이 넘쳐 독선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
아내나 아이들 모두 착한 인성의 인격체임이 분명했지만 가끔 내 눈에 차지 않았고 나는 못마땅해했다.
50대 중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아빠가 불만을 가지면 어느 순간 가정 분위기가 냉랭하게 가라앉게 된다.
그즈음에는 그냥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이 내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지나온 인생역정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열심히 할 자신도 의지도 소멸되고 없다.
나락으로 떨어졌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을.
기를 쓰고 다시 기어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제 몸을 쥭이려 드는 쟈샬 세포가 때맞춰 활동을 개시했다.
파괴될 때는 확실하게 파괴되어야 한다는 악마의 목소리가 나를 지배했고 기필코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울타리를 잃은 가족도 속절없이 밀려났다.
가족 이산은 나 스스로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마치 온 가족이 쟈샬바위에서 몸을 던진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즉시 세상과 이별하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들숨과 날숨을 계속 이어가자 생명체가 갖는 기본적 문제에 봉착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금융문제가 나를 몰아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채무가 내게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돈 문제는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백날 생각에 숙고에 고민해 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은 분명했고 계산은 정확했다.
지금의 쟈기 퍄괴적 심신상태로는 살아있는 동안 빚을 다 갚을 수 없다.
지금부터 80세 남짓까지 정신 온전한 삶이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25년 정도 남았다.
80세 이후에는 자기 똥오줌만 가려도 기본을 하는 것이다.
80세면 집에 누워 있으나 무덤 속에 잠들어 있으나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나이가 되어서도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한다면, 글쎄?
아무리 후하게 봐주더라도 70대 중반 이후에는 용돈벌이를 넘어서는 돈벌이는 불가능하다.
50대 후반부터 70세까지 돈을 번다면 15년 정도다.
월 150만 원 벌어서 생활비로 50만원 쓰고 채무 상환에 100만 원씩 쏟아붓는다고 한다면,
15년간 갚을 수 있는 돈은 100만 원/매월 × 12개월/1년 × 5년간 = 6천만 원이 된다.
5년간 갚으면 6천만 원, 15년간 갚으면 1억 8천만 원이 되지만, 계산이 이렇다는 것이지 톡 까놓고 말해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가진 자본금이 없으니 몸으로 일해서 벌어야 하는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5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까지 5년간, 15년간 꾸준히 돈을 번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물론 5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가정이 비현실적이면 그 가정을 바탕으로 한 계획이나 결과도 설득력을 잃는다.
채무 3억 원은 한 달 100만 원씩 25년간 갚아야 하는 금액이다.
50대 후반이고 샮의 의욕을 상실한 채무자가 몸으로 일하고 돈을 벌어서 3억 원의 빚을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을 내린다. 그냥 쥭든지 또는 빚 갚기를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하면 된다"라는 무책임한 헛구호에 현혹되어 무리를 하게 되면 저승까지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꼴이 된다.
채무상환은 고사하고 골병에 병마로 자식들 근심걱정 시키며 생을 마감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쟈샬하지 않고 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건지 결론을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
채무 상환은 포기하고 생명유지 살아 버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살아생전 빚은 다 못 갚는다. 일단 채무에 대한 생각은 잊자.
지금 상황에서는 살아 버티는 것 자체도 버겁다.
이 시간 이후로 오직 살아 버티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채무 상환을 포기하니 삶의 길도 명쾌해진다.
채무불이행자에게 일반인과 같은 일상생활은 없다.
이미 정상적인 평온한 생활은 불가능하다.
빚을 못 갚았든 안 갚았든 구분하지 않는다.
일상을 포기하게 되고 뷰졍적인 심리가 현재와 미래까지 지배한다.
신용도 1등급 수준에서 신용불량, 즉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채무의 압박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에 예외가 없는 것과 같다.
내가 왕년에 어쩌고 해 봐야 소용없다.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오히려 술 앞에서는 장사가 있다.
골키퍼가 상대 진영을 향해 차올린 축구공이 그라운드로 다시 떨어지는 각도로 신용추락이 진행됐다.
아니 그보다도 더 가파르게 신용도가 추락했다.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이 대기권에 진입한 후에 낼 수 있는 중력가속도로 신용이 추락했다.
채권추심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먹고사는 것조차 문제로 대두된다.
혼자 살아도 한 달에 50만 원은 필요하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기본만 하는 데도 그렇다.
지방의 원룸 월세 (창문이 없어 방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없고 낮에도 햇볕이라곤 들지 않아 어두컴컨한 것이) 15만 원, 식비 30만원, 가스비 2만원, 전기료 2만원, 통신비 2만원, 교통비 5만원, 기타비용 5만원, 절대 아프면 안되고, 경조사비는 문자나 전화 한 통으로 때운다.
정말 최소한으로 먹고 자고 숨만 붙어 있도록 하는데도 이렇다.
이렇게라도 살 주거여건이 되는 파산에 직면한 채무불이행자는 아주 괜찮은 편에 속한다.
매달 생활비 50만 원은 어디서 나오나?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은 돈을 못 번다. 아니 안 번다.
내 생활욕구는 허무감에서 무력감으로 변한다.
훨씬 좋은 여건의 직장도 차 버리고 나왔는데, 목숨 부지하자고 남의 의지에 내 의지를 종속시키면서 푼 돈벌이를 할 수 있겠는가.
할 마음도 없고 오라고 하는 곳도 없다.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직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얼굴 아는 지인이 인정을 베풀어 써주지 않는다면 일할 곳이 없다.
설사 직장에 취직이 되더라도 150만 원(2019년 4월부터 185만 원) 이상의 급여는 압류되는 것을 알기에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급여가 압류될 것이 분명하니 취직해 봐야 실익도 의미도 없다.
당연히 직장에 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게 된다.
50대 중반에 전 재산 5억 원 정도 털어먹고 3억 원 정도 빚까지 졌으니 무슨 의욕이 솟구치겠는가?
30년 가까이 월급쟁이 해서 내 집 하나 달랑 마련했는데 그것을 홀라당 깨 먹었다 생각해 봐라.
한국 사회에서 월급쟁이가 덜먹고 안 쓰면서 동서남북으로 이사 다닌 끝에 마련한 집 한 칸이다.
은퇴 후 아니 명퇴 후 돈 좀 벌어 보겠다고 하다가 주식 파생으로 다 깨 먹었으니 그 심정이란 정말, 진짜 정말이다.
그 돈으로 가족 해외여행이나 다녔다면 생색이나 낼 수 있었지.
60대를 코 앞에 두고 무일푼에 빚만 3억 원이라. 아! 빚이 자신감을 압도한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50대 후반, 재기할 생각을 접는다(2) : 빚 못 갚으니 법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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