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원고의 소취하서를 받으면 좀 당황스럽다. 소를 제기했다가 다시 소를 취하하는 의도를 잘 모르니까. 하지만 세상에 채권자가 의미 없이 하는 법적조치는 없다. 채권회수를 위한 고도의 작전이고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채권자 원고의 소취하서
원고의 '소취하서' 전자 문건이 접수되었다는 문자를 법원으로부터 받았다. 이게 뭐지? 뜬금없이 '소취하서'라니? 아! 직감적으로 원고인 채권자가 지급명령 민사소송을 취하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왜 원고가 소를 취하했지? 나름 짱구를 굴리던 차에, 휴대폰에서 전자메일 도착 알람이 울렸다.
'소취하서'를 확인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메일을 법원에서 보낸 것이었다. 나쁜 소식은 아닐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제목 : 서울중앙지법 2019가소*******에 대한 소취하서(문건) 접수되었습니다.
접수결과통지
서울중앙지법 2019가ㅇ*******의 원고 측 "소취하서" 이(가) 접수되었습니다.
1. 사 건 : 2019가ㅇ******* 양수금
2. 원 고 : ㅇㅇㅇㅇㅇ 주식회사
3. 피 고 : ㅇㅇㅇ
4. 접수번호 : 20191114000**00******
5. 접수 일시 : 2019-11-14 **:**:48
6. 제출 서류의 명칭 : 소취하서
7. 제출자 : ㅇㅇㅇㅇㅇ 주식회사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대법원 전자소송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열람/발급]>>[나의 사건열람] 메뉴를 선택한다.
사건번호를 입력 후 오른쪽 [사건기록열람]을 클릭하여 제출 문서를 확인한다.
※ 본 메일은 발신전용 메일입니다.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 전자소송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외출 중에 있던터라 바로 전자소송 사이트에 접속할 수가 없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라야 법원 전자소송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 와서야 '소취하서' 접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원 전자소송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니 내용은 이메일로 아낸 받은 것과 같았다.
같이 보는 글 : 소송신청 의뢰 예고 돌려가며 추심문구 선택한다
소취하서, 채권회수 또는 비용절감을 위한 고도의 전략
" 이 사건에 관하여 원고는 소를 전부 취하합니다." 전자메일로 알려준 내용을 문서화해서 전자소송 사이트 나의 사건 진행 내역에 업로드해 놓고 있었다.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채권자 원고 측이 소를 취하하지? 그것도 변론기일까지 잡힌 마당에. 소취하서를 다시 꼼꼼히 읽고, 인터넷을 뒤져서 대충 알아보고 나서야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소취하의 이유는 소취하서 "유의사항"에 그 답이 있었다.
"소취하 효과가 발생하면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14조에 따라 소장에 붙인 인지액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의 환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제출한 소송 등 인지의 납부서에 환급계좌를 기재한 경우에는 환급 청구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바로 이것이 채권자 원고가 소취하 한 주된 이유였다.
소를 취하하면 소송을 제기할 납부했던 인지액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다 원고인 채권자가 정확히 판단한 것이다. 이번 채권자는 참 똑똑한 것 같다. 소송에서 이겨봐야 채무자 피고한테 돈을 받아내기는 글렀다고 본 것이다. 채무자 피고로부터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바에는 생때같은 인지세를 전액 날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채권자가 지급명령판결을 청구하고,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채권자가 민사소송으로 가기 위해 송달료와 인지세를 추가 납부하라는 법원의 보정명령에 응하고,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한 이의제기 답변서를 제출하고, 법원에서 변론기일을 채무자와 채권자에게 통보하고, 이제 남은 절차는 변론기일에 원고(채권자)와 피고(채무자)가 출석하여 그간 닦은 무공을 겨루는 것이다.
채권자가 생각하기에 이번 채무자는 바늘로 찔러도 돈 나올 구멍이 없는 거 같다. 끝까지 가는구나. 법원의 변론기일통보를 받고도 채무자는 채권 추심원에게 연락조차 없다. 이 채무자는 지급명령 민사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채무를 정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이 채무자는 지금 돈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채권자 원고 입장에서 지급명령 민사소송에서 이겨봐야 당장의 경제적 실익이 없다.
혹자는 그래도 지급명령 판결을 받으면 강제집행권원을 획득하고 소멸시효를 10년으로 연장시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지급명령 판결을 받으면 재산명시신청, 재산조사, (가) 압류, 유체동산압류, 채무불이행자등재 등 여러 가지 강제집행 방법을 통하여 채무자를 압박할 수 있다. 소멸시효도 10년 연장시키므로 이후에 느긋하게 채권추심을 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하나만 알고 둘은 간과한 것일 수 있다. 채권자가 일반 개인이나 특정한 신분이라면 인지세 등 소송비용이 들더라도 지급명령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지금 이 민사소송을 건 채권자는 대부업체이다. 대부업체의 영업/사업전략은 대부업체마다 다르고 여러 방식일 것이다. 내 채무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이 대부업체는 철저하게 비용 대비 효과를 기준으로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
내가 판단하기에 내 채무에 대한 채권추심을 하는 이 대부업체는 나에 대한 채권을 매각할 생각인 거 같다.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채무자에게서 더 이상 채권회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차피 받아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채권이라면 더 이상 돈을 들여가며 소송비용으로, 채권추심비용으로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 상태에서 이 채무자에 대한 채권추심을 중단하고 다른 업체(대부업체, 저축은행, 유동화전문회사 등)에 채권을 팔아넘기자.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만약에 채권자가 이러한 판단으로 나의 채무에 대한 민사소송을 취하하는 것이라면 똑똑한 결정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점에서 소취하 함으로써 인지세 절반을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채권추심에는 철저한 경제논리가
경제/경영 전문용어 중에 "매몰비용" 또는 "매몰원가"라는 것이 있다. 이미 들어간 비용은 또는 원가는 되돌릴 수 없으므로 포기하고 이후의 의사결정 판단에 고려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깝지만 지금까지 들어간 채권추심비용, 소송비용은 이미 써버린 매몰비용으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서 회수가 난망한 아니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는 채권추심 건에 비용을 계속 쓰는 것은 낭비이고 경제/경영 개념이 없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결과 이 채무자에게서 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은 없다. 이쯤에서 채권추심을 접고 이 채권은 다른 회사(대부업체, 저축은행, 유동화전문회사 등)에 팔아넘기자. 더 이상 채권추심비용 투입은 안된다. 지금에라도 건질 수 있는 비용이 있으면 당장 회수조치를 취하자. 뭐,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변론기일까지 정해진 지금 시점에 소취하서를 제출하고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납부한 인지세의 절반을 돌려받으려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원고인 채권자는 지급명령 민사소송을 위해 송달료 5만 원 정도, 인지세 10만 원 정도를 법원에 납부했다. 만약 소취하가 확정되어 인지세 절반을 환급받는다면 채권자는 납부한 인지세의 절반인 5만 원 정도를 돌려받게 될 것이다.)
소취하가 확정되기 위해서는 소취하의 시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변론기일 전, 판결이 나기 전에 원고가 소취하 하는 경우는 피고가 소송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소취하가 확정된다고 한다. 내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소취하가 확정되는 것이다.
참고하는 포스팅 : 재산명시신청 명시선서 약 6개월 걸리네요
재산명시신청 명시선서 약 6개월 걸리네요
재산명시명령을 받고 법원에 출두하여 재산명시 명시선서를 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개인채권자에 대한 빚은 어떻게 해서든 갚아야 한다. 하지만 채무자도 일단 살아야 채무상환을 할 수
defaulter.tistory.com
이 채권자 참 똑똑하네. 결과적으로 나는 약 3개월 후로 예정된 변론기일에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 채무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또 한고비가 이렇게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분명 반전의 때가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