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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채무자의 편이다/채권추심 버티기

시간은 채무자의 편이다

"마침내 멀리 갈 때는 천천히 걷고"

-이순신 장군의 "나의 길을 가련다" 중에서-


돈 없으면 빚은 못 갚는 것이다.

돈 없으면 신용제일 선생님이 와도 용빼는 재주 없다.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돈 없으면 빚 못 갚는다.

돈 없는 채무자에게는 신용 들먹이고 인간 됨 들먹이고 해 봐야 소용없다.

빚 갚고 새 출발하고 싶은 마음은 빚진 자가 가장 절실하다.

빚진 사람의 절박함은 '햄릿' 못지않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아니라

"갚느냐, 못 갚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 된다.

"갚으면 살고, 못 갚을 바엔 죽고 말란다."쯤 된다.

그렇지만 생각을 고쳐먹기로 한다.

빚 갚기에 모든 걸 걸더라도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한다.

채무자가 살아야 빚도 갚는 것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심장에 강철을 박아야 한다.

채권추심의 강도가 세질수록 버티는 맷집도 레벨업 되어야 한다.

사기로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면 빚 때문에 형사 처벌 받지는 않는다.

일상의 채권채무 관계는 형법의 문제가 아니다.

쇠고랑 차는 것 하고는 관계없는 것이다.

민법의 문제일 것이고, 아주 쬐끔은 인간성, 신뢰의 문제일 것이다.

괴로움은 있을지언정 은팔찌 차고 포토라인에 서고 감옥 가고 하는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남의 돈 떼먹을 생각으로 속임수로 빌린 돈이 아니라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닌 것이다.

좀 늦더라도 돈 생기면 갚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빌린 것이 아니니 돈 벌어 갚으면 되고 못 갚으면... 능력 갖출 때까지는 못 갚는 거다.

 

자기 목숨 버리면서까지 빚 갚으려는 것은 바보 짓이다.

인간사에 신의가 중요하고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목숨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빚 못 갚는 죄책감에 세상 등지면 안 된다.

남은 여생을 빚 갚기에 올인하면 안 된다.

TV 인간극장 다큐멘터리처럼 빚 갚고 바로 세상 하직한 사람 흉내 내지 마라.

채권자가 들으면 괘씸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내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빚 갚기를 시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쥭을 각오로 빚 갚기에 올인' 이 아니라 '살 각오로 능력 닿는 데까지만 빚 갚기'가 되어야 한다.

 

종종 유명한 사람이 큰 액수의 빚을 다 갚고 인생 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접한다.

유명한 사람들이야 유명세를 이용해 돈을 잘 버니까 크게 빚 지기도 하지만 큰 빚도 해결하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크게 진 빚을 콘셉트로 방송생활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한다.

대놓고 개인회생이나 파산면책으로 빚에서 탈출한다.

 

보통 사람은 이런 기회가 드물다.

보통 사람은 가진 재산 범위 내에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

사업 말아먹고, 투자 실패하고, 사기 당하여 진 빚을 또 다른 땡 빚을 끌어와 갚을 수도 없다.

돈 없으면 없는 수준에서 갚는 것이... 아니라 돈 생길때까지 못 갚는 것이다.

사람 살다가 빌린 돈 못 갚을 수도 있는 거다.

우선 내가 살고 보자 마음먹어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살아있다 보면 '한방에 OK' 아니 '한방에 해결' 로또라도 당첨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괴로움에 날밤 까며 불면의 시간 속에 가슴 태운 것은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지금 그럴 수가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신용 없는 사람이 되어보렸나 하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표정관리 하려고 해도 얼굴에 투명 지를 씌운 것처럼 괴로워하는 내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누구라도 봤다면 이 사람 정상이 아니다라고 바로 느낄 정도였다.

심장에 맑은 피만 흐르고 있어 채권추심 문자메시지에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누군가 옆에서 들었다면 심장박동 소리가 갑자기 커졌음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 왜 나는 얼굴에 철판 깔고 심장에 철심을 박지 못한 유약한 사람인가.

내 몸의 DNA와 내 마음의 심원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경험적 학습능력은 뛰어나다는 점이다.

스스로 유연한 마음 상태를 가지려 자기조절을 한다.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만 내 의지를 실천하는 편이다.

잘못된 점을 깨달으면 불문곡직 바로잡는다.

옳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역진불가(逆進不可), 되돌릴 수는 없지만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내게 운이 남아있고 천시(天時)가 맞아떨어진다면 인생의 봄날을 한 번 더 맞게 될 거라 기대한다.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안 된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야한다.

남은 여생 죽을 때까지 가야 하므로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그동안 족히 백 번은 읊었음직한 이순신 장군의 "나의 길을 가련다"를 또 되새긴다.


빈궁과 영달은 오직 저 하늘에 달렸으니

모든 일은 모름지기 자연에 맡기리라

부귀함은 때가 있으나 홀로 차지하기 어려운 법

공명이란 임자가 없어 번갈아 서로 전하는 것이네

마침내 멀리 갈 때는 천천히 걷고

처음에 먼저 오를 때는 넘어질 것을 염려하라

도성의 누런 티끌 속을 헤쳐 나갈 적에

남의 뒤를 따라가되 채찍질하지 말라

 

뜻을 세웠으니 이제 실천만 남아있다.

넘어진 곳에서 인생 2막, 3막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금 빈손 출발이니 망해봐야 잃을 것도 없다.

곱씹고 되뇌인다.

 

"마침내 멀리 갈 때는 천천히 걷고"

"마침내 멀리 갈 때는 천천히 걷고"

......

 

시간은 채무자의 편이다.

시간을 길게 잡고 천천히 가야 한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채무자라고 해서 법원에 출석하는 거 겁낼 필요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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