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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채무자의 편이다/채권추심 버티기

채무자는 법원 출석하는 것을 겁낼 필요 없다 (2)

재산목록은 거짓 없이 적어내면 된다.

내 재산이랄 것이 없으니 감추거나 속이거나 할 것도 없다.

오히려 통장 마이너스 대출 내역을 재산목록으로 적어 내는 것이 쑥스럽기까지 하다.

재산명시명령을 받고 처음에는 약간 긴장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 대처하자 마음먹으니 긴장감도 사라졌다.

세상에 가장 겁낼 것 없는 사람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있어야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이혼, 빛, 실업 3종 세트를 보유한 마당에 더 이상 체면 구길 것이 없었다.

될 대로 대라는 자포자기 심정에 휩싸이는 순간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판단은 빠르고 분명했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돈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채무 빚 밖에 없다.

두려워하거나 긴장할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

돈 없는 채무자에게서는 채권추심의 세계챔피언 아니라 그 할아비가 와도 돈을 뺏어 갈 수 없다.

채권자가 성질난다고 돈 없는 채무자를 감방에 처넣을 수도 없다.

 

재산명시선서하러 법원 가는건 그저 처음 가보는 목적지로의 외출일 뿐이다.

법원 출석시간 맞추느라 신경 써야 하는 거 빼고는 어려운 거 없다.

인생 태어나서 법원 출석도 처음이었고, 판사 앞에서 오른손바닥 펴 들고 선서도 처음이었다.

법원이 지리적으로 외딴곳에 떨어져 있으면 오고 가는데 불편할 뿐이다.

평생 가지 않아도 되는 낯선 곳에 간다는 찝찝한 기분만 다독이면 된다.

막상 가보니 법원은 시설도 좋다.

대기하는 동안 자판기 커피도 한잔 뽑아 먹었다.

어슬렁어슬렁 오가는 사람들 눈길을 피하며 내가 출연할 시간을 기다린다.

긴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법원 우편물에서 예고한 대로 법원 직원이 안내하는 데로 절차를 따르면 된다.

 

법원이 출석하라는 날 출석 못할 사정이 있으면 미리 출석 날짜 연기 신청을 하고 그 날짜에 가면 된다.

출석 못할 이유를 근거자료로 첨부하여 날짜를 연기하면 되는 것이다.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비즈니스 출장이라든가, 병원 진료라든가, 오래전에 예정된 일정이 있으면 법원 출석 일을 미루는 것이다.

법원은 공평한 중간자의 입장이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똑같이 대우한다.

채무자는 형사범죄를 저지른 죄인이 아니다. 사기를 쳐서 돈을 빌린 게 아닌 한.

이유 없이 재산명시명령을 따르지 않고 출석하라는 날에 출석하지 않으면 판사가 20일 감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감치'라는 용어도 처음 듣는데, 쉽게 말해서 거주지 인근 파출소 창살방 유치장에 가둬놓는 것이라고 이해하자.

뭐 말하자면 출석하라는 날 무단결석 했다고 판사가 군기 잡는 거라 할 수 있겠지.

20일 감치명령 내릴 수 있다는 말에 쫄 릴 필요까진 없다.

판사가 채무자가 미워서 감치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자.

다시 한번 상기하자 법원과 판사는 중간자 위치다.

채권자와 채무자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법에 정해진 대로 처리하고 판결할 뿐이다.

 

아차 실수로 법원 출석일에 가지 못해서 감치명령을 받더라도 그러려니 생각하자.

유명한 사람은 대개 한 두 번씩 감방 갔다 온다.

감치명령을 받아 경찰서 유치장이라도 한번 갔다 오면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 아닌가.

인생 살면서 감방 비슷한 곳 체험도 해 볼만하지 않은가.

솔직히 어떤 때는 일정 기간 교도소에 들어가서 지내는 경험을 해볼까 싶을 때가 있다.

세상의 밝은 면을 보듯이 어두운 면도 봐야 세상을 골고루 사는 거지. 한번 사는 인생인데.

영원히 갇혀있는 것도 아니고 짧은 기간 경험하는 것이라면, 글쎄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전제조건은 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죄목이 아니라 양심적으로 크게 거리낄 것이 없는 사유로 수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치적 이유, 자기 회사부도, 채무보증 등 양심에 걸리지 않는 명목으로 수감된다는 전제하에.

 

채권자가 여러 명이면 재산명시명령 법원 출석도 여러 번 해야 할 수 있다.

나는 재산명시명령을 두 번 받았다.

판사 앞에서 두 번 선서했다는 말이다.

두 번째 출석해서는 그것도 경험자라고 그날 처음 온 사람에게 재산목록 작성에 대하여 한두 마디 가르쳐주고 그날 진행되는 절차를 귀띔해 주기도 했다.

"이거 얼마나 걸리죠?"

"아, 이거 30분이면 돼요. 재산목록 작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 때문에 좀 늦어지고 있는 거예요.

각자 자기 재산목록만 작성하여 제출하면, 판사 앞에서 오른손 들고 선서하고 끝나요.

그것도 사람이 많아서 개인별로 한 사람씩 나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 한 명이 선서할 때 같이 오른손 들고 합창하듯이 선서하고 끝나요.

선서 자체는 1분도 안 걸리죠. 학교 다닐 때 무슨 선서 같은 거 해 보셨잖아요. 그렇게 하면 돼요."

경험자가 신참에게 짠 밥 티를 내며 말해줬다.

 

만약에 나의 또 다른 채권자가 재산명시명령을 청구하면 나는 또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빚이 여러 군데인 다중채무자이다 보니 얼마든지 또 출석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 갔다 왔으니 세 번째는 아주 익숙하게 응할 것이다.

법원 까짓거 가면 가는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재산 없어서 빚 못 갚고 있으니 나로선 어쩔 수가 없다.

지금 현재 재산 없는 그대로 재산목록 적어내고 시키는 대로 선서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잠깐!
재산명시명령 받고 재산명시선서하러 법원에 출석하는 것은 1회만 하게된다.
다중 채무자라면 가장 행동이 빠른 채권자 한곳만 재산명시명령을 신청 할 수 있다.
채무자가 재산명시선서를 두번 하는 것은 법에 없다.

그런데, 내 경우는 같은 법원에 각각 다른 채권자의 재산명시명령 신청을 하게되어 2번 재산명시선서하러 법원에 출석하였다.
이것은 재산명시명령 신청이 같은 날 두 채권자로 부터 이루어져서 법원에서도 혼동하여 일을 잘 못 처리하는 바람에 채무자가 두번 법원에 출석하여 재산명시선서를 해야 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두번째 재산명시명령 한 것은 무슨 무슨 이유로 취소되는 형태로 처리 기록이 수정되어 있더라.

법원도 업무처리에 실수를 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파산신청을 하려는 채무자도 법원 업무를 볼때는 항상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법원측에서 일을 잘 못 처리한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법원의 업무처리 실수 덕분으로 재산명시선서를 두번 하였다.
위에서 썰을 푼 것처럼 세번째 법원 출석할 지도 모른다는 말은 그래서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런 된장!

 

웃기는 얘기지만 일 마치고 법원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법고시 패스하여 판검사 자격으로 법원에 왔어야 할 사람이, 민사재판 피고 측(채무자) 당사자가 되어 왔네.'

2,30대 젊은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환경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를 탓하지도 않았고, 가정환경을 탓하지도 않았고, 부모를 탓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나만 열심히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리대로 흘러가지도 않았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만도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나의 14번째 또는 15번째 뒤따라오던 차가 연쇄 추돌로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전혀 예측 불가한 이유로 내가 난관에 빠질 수도 있고 극복 불가능한 일에 휘말릴 수 도 있다.

세상 살면서 내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내 인생이 내 의지에 따라 흘러간다고 생각하였지만 내 의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에 수시로 직면하게 되니 내 인생이지만 내 의지와 관계없이 흘러간다고 볼 때가 많아졌다.

타고난 DNA 대로 살아가는 것 같고 어떤 운명행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윤 모 씨의 개인파산 인생극장 이야기 다음 포스팅으로 : 채권추심업체 채권추심원의 추심에 쫄지 말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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